•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⑬

     아버지가 면회를 오셨다.
    대역죄인인 탈옥범에게 면회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미국 공사 알렌과 스트리플링, 거기에다 외부대신 박제순 등이 애를 써준 것이다.

    한성감옥서의 면회소로 수갑에 족쇄까지 채워진 내가 발을 끌며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곧 허리를 펴더니 나를 똑바로 보았다. 면회소 안에는 우리 두 부자에다 입회한 간수가 둘이나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오냐. 봉수 걱정은 말거라.」
    반듯이 앉은 아버지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너는 양녕대군 16대손으로 손색이 없다. 장하다.」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어서 나는 숨을 삼켰다.
    그러나 언뜻 입이 떼어지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그 순간 나는 행복했다.
    내 25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내 처지를 잊을 정도였다. 자식은 부모한테서 이런 칭찬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내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불효자식입니다. 걱정만 끼쳐드렸습니다.」
    「아니다.」

    한마디로 자른 아버지가 머리까지 저었다.
    「너는 이만큼 한 것만으로도 네 이름과 조상을 빛내었어. 잘했다.」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아버지는 곧 내가 사형당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자식과의 마지막 상면으로 안다.

    아버지의 시선을 받은 내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몸 보중 하십시오.」
    「오냐, 너는 다른 걱정 말고.」

    그때서야 어깨를 늘어뜨린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백성들이 다 너를 안다.」

    어떻게 면회소를 나왔는지 모르겠다.
    족쇄의 쇠사슬을 끌며 복도를 걷는 내 옆으로 다가온 간수가 말을 붙였을 때에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이승만씨, 당신이 탈옥해서 종로로 달려갔을 때 내 동무들도 종로에서 모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놀란 내가 머리를 돌려 간수를 보았다.
    늙수구레한 얼굴의 간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웃었다. 복도에는 우리 둘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소문이 났다는거요. 박영효 일당이 군중 모임을 주선했다고 말이요. 그래서 내 동무들이 종로에 가지 않았답니다.」

    나는 잠자코 발만 떼었고 간수가 바짝 다가서서 묻는다.
    「이승만씨. 박영효하고 같이 모의를 했소? 종로에서 박영효를 만나기로 한거요?」
    「아니오.」

    간수의 시선을 받은 내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난 박영효 얼굴도 본 적이 없소.」
    「그럼 왜 그자를 대신임용후보로 올린 것이오?」

    간수가 열심한 표정으로 물었으므로 나는 기력을 짜내어 대답했다.
    「황제의 개혁 의지를 확인하고 싶었소. 박영효를 불러들여 개혁을 맡기겠다는 의지 말이오.」

    무거운 발을 끌어 딛으면서 내가 말을 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나는 황제 편에 서서 박영효의 죄를 물었을 것이오. 물론 박영효가 귀국했을 경우지만 말이오.」

    내가 쓴웃음을 지었으므로 간수는 눈만 치켜떴다.
    「지금 생각하니 다 탁상공론이었고 현실성이 없는 짓이었구려. 내가 아직 미숙한 탓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