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⑪ 

     비었다.
    종로 거리에 선 나는 몇 번이고 주위를 둘러보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5시 15분, 4시 45분에 도착해서 30분 동안이나 기다렸지만 회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시위대 병사들이 군데군데 서있다. 계획이 발각된 것이 분명하다.
    주머니에 넣은 권총이 자꾸 걸리적 거렸으므로 내던지고 싶었다.

    왜 모이지 않았는가 그 이유를 생각할 여유도 없다.
    빈 종로 거리를 본 순간 머릿속도 비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몇 시나 되었습니까?」
    다시 옆을 지나는 양복쟁이 신사에게 시간을 물었던 나는 뒤쪽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머리를 돌린 나는 숨을 멈췄다. 시위대 군사들이 다가오고 있다.

    「5시 반입니다.」
    조끼에서 꺼낸 회중시계를 보며 신사가 말했으므로 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열 종대로 다가오는 시위대 군사들은 20명쯤 되었고 장교 하나가 인솔을 했다.
    나는 길가의 담장 옆으로 다가가 섰다.
    시위대에 등을 보인 채 앞장 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걸을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를 악문 나는 앞쪽을 본 채 서 있었다.

    이제 발자국 소리는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장교가 먼저 내 앞을 지난다. 그리고 일열, 이열, 삼열, 그때였다.
    「이승만씨 아니시오?」

    불쑥 군사 하나가 묻고 나서 대열이 어수선해졌다.
    뒷열은 멈춰 섰고 앞쪽 열은 서너 걸음 더 나가다가 흩어지더니 나를 보았다.
    나에게 물은 군사는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가득 차 있다.

    군사가 한걸음 다가서며 또 묻는다.
    「아니, 감옥서에 갇혀있다고 들었는데 석방이 되셨군요.」

    나는 눈의 초점을 맞춰 군사를 보았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못했다.
    선한 군사의 얼굴을 보자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탈옥을 했다고 말 할만큼 객기가 있지도 않다.

    그 때 다른 군사 하나가 말했다.
    「이상한데, 오늘 아침에 감옥서의 내 동무가 이승만씨 이야기를 했는데, 사형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말일세.」
    「이승만씨, 지금 어디서 오시는 길이시오?」
    하고 뒷전에 서 있던 장교가 물었으므로 나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감옥서에서 나왔소.」
    「석방 되신 것이오?」
    「그렇소.」

    그때였다.
    나는 장교 뒤쪽에 서 있는 박무익을 보았다. 박무익의 옆에는 수하 서너명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 낯이 익다. 내 얼굴이 굳어졌고 장교가 한걸음 다가와 섰다.

    「우리하고 같이 가시지요. 석방 되신 것을 확인하면 가마로 모셔 드리겠습니다.」

    나는 박무익의 얼굴이 굳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머리를 저었다.
    일을 일으키지 말라는 표시였다. 머리를 자꾸 저었더니 장교는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나 마침내 내 시선과 마주친 박무익이 머리를 숙였다.

    됐다. 그 때 나는 소리치듯 말했다.
    「좋소. 갑시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총신을 거꾸로 쥐고 장교에게 내밀었다.
    「자, 권총을 가져가시오. 난 탈옥했소.」
    군사들이 술렁거렸고 주춤 놀랐던 장교가 내 손에서 권총을 낚아채었다.

    「어서 모셔라!」
    장교가 소리치자 군사들이 대열을 정돈했다.

    나는 이제 군사들 사이에 끼어있다.
    머리를 들었더니 박무익은 몸을 돌리는 중이었다.
    군중은 다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