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⑨ 

     간수가 여동생이 면회 왔다고 했을 때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사촌 여동생도 없었기 때문이다. 면회실로 나간 내 가슴이 이제는 거칠게 뛰었다.

    예상은 했지만 오선희의 모습을 보자 감회(感懷)가 회오리바람처럼 솟구친 것이다.
    스트리플링의 영향력으로 간수는 내 면회 때는 자리를 비켜준다.
    면회실에 둘이 마주 앉았을 때 먼저 입을 뗀 것은 오선희다.

    「이겨내실 거죠?」
    눈을 치켜 뜬 오선희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다.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걱정마.」

    그 순간 나는 탈옥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종로에서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회원들을 모아 불씨를 일으키겠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오선희를 끌어들이면 안되는 것이다.

    「기다릴께요.」
    다시 오선희가 한자 한자를 힘주어 말한다.
    눈을 떼면 내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노려보고 있다.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앞으로는 면회 오지마. 내 말 들어.」
    「왜요?」
    「내가 사람 시켜서 연락 할테니까 거처만 말해줘.」
    「남산동 유림서원 뒤쪽 안참판댁에 있어요. 안참판이 제 외숙입니다.」

    머리만 끄덕인 나에게 오선희가 쏟아붙이듯 말을 잇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주 토지 문서를 저당 잡혀서 내장원 사람하고 만나기로 했으니까요.」

    놀란 내가 입만 딱 벌렸고 방안을 둘러본 오선희가 말을 잇는다.
    「문서방이 이번에는 모리 같은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내장원 사람을 만났어요. 선생님을 빼내는데 3만원이면 된다고 합니다.」

    「이것 봐, 선희.」
    마침내 내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눈을 치켜뜬 내가 말을 잇는다.
    「이곳을 나가면 바로 제중원에 가서 닥터 셔만을 찾아. 셔만에게 재석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알려 줄거야. 재석을 만나 그 이야기를 상의하라구. 꼭 해야 돼, 알겠지?」

    내 기색을 본 오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내가 말을 잇는다.
    「재석이 동료하고 상의해서 잘 처리해 줄거야. 절대로 직접 내장원 놈들을 만나면 안돼. 함정일수도 있고 토지만 빼앗기는 사기를 당할 수도 있어.」
    「알았습니다. 꼭 그렇게 할게요.」

    정색하고 오선희가 말했으므로 나는 길게 숨을 뱉았다.
    3만원이면 빼내 주겠다는 내장원 놈은 사기꾼일 것이었다.
    황제가 직접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데 웬 3만원이가?
    그러나 이 이야기도 오선희에게 할 수가 없다.

    그때 문득 오선희가 머리를 들고 말했다.
    「선생님, 만일 선생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저도 따라갑니다.」

    오선희의 눈빛은 강했다.
    입술을 꾹 붙인 채 오선희는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굳어져서 나를 본다.
    순간 숨을 죽였던 내가 입을 열었다.
    「새 조선을 끌고 나가야 할 신여성이 마음 약한 소리를 하면 돼?」

    꾸짖듯 말했지만 결국 나는 시선을 내리고 말했다.
    그러나 가슴은 세차게 뛴다. 온 몸에는 열이 오르고 있다.

    그 때 오선희가 말을 이었다.
    「다 싫어요. 저는 선생님뿐입니다. 선생님만 살아 계시면 되요.」

    오선희는 장안 소문을 다 듣고 온 것이다.
    내가 사형당할 것이라는 소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