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④ 

     「바쁘지 않다면 나하고 시병원(施病院)에 함께 가시지 않겠소?」
    하고 닥터 셔만이 물었으므로 나는 먼저 주위부터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오전 10시쯤 되었다. 둘러보나마나 에비슨 사택 응접실에는 셔만하고 둘 뿐이다.

    머리를 든 내가 셔만을 보았다.
    에비슨이 옆에 있었다면 무슨 핑계를 대든지 해서 나를 못 가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셔만은 내가 왜 이곳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셔만이 잠깐 기침을 했다. 의료 선교사중 셔만은 나이가 많은 편인데다 몸도 약했다.

    「좋습니다. 다녀오지요.」
    마침내 내가 말했을 때 셔만이 입을 가렸던 손을 떼고 웃었다.

    「고맙소. 내가 빨리 조선말을 배워야 될텐데 말이요.」
    우리는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에비슨의 상동(尙洞) 사택을 나온 나는 셔만과 함께 시병원을 향해 걸었다.
    추운 날씨였다. 감기에 걸렸는지 셔만은 자주 기침을 했다.

    「셔만 박사는 좀 쉬셔야겠소.」
    보다 못한 내가 위로하듯 말했을 때 셔만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렇지 않아도 좀 쉬려고 합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거리에는 통행인이 드문 편이다.
    시병원은 낙동(駱洞)에 있었으므로 일본총영사관 건물 앞을 지나갈 때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갑자기 내 옆으로 군사 하나가 다가섰다. 

    「당신, 이승만이지?」
    시위대 제복 차림의 군사가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군사 뒤쪽으로 또 한명이 서있다.

    그때 셔만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에게 영어로 묻는다.
    「리, 무슨 일입니까?」
    「별일 아닙니다.」

    내가 대답했을 때 군사가 바짝 다가섰다.
    둘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영사관 옆쪽 골목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대답하시오. 당신, 이승만이지?」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죄인을 수배할 때 용모를 그려 붙여 대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그동안 수천, 수만 명 앞에서 수십 수백번이나 연설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때 군사가 바짝 다가서며 말한다.
    「이승만씨, 나는 여러 번 당신을 보았소. 당신의 개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기도 하오.」

    그러더니 군사가 내 팔목을 쥐었다.
    「허나 반역음모로 수배된 이상 놓아줄 수는 없소.」
    「이봐, 군사, 왜 이러는거야?」
    하고 셔먼이 소리쳤지만 영어였고 설령 알아들었다고 해도 놓아줄 군사가 아니다.

    내가 셔먼에게 말했다.
    「셔먼박사, 난 반역음모로 수배 중이었다고 합니다. 체포되었으니 끌려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리, 어떻게 그런...안되오.」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 셔먼이 곧 눈을 부릅떴다.
    「내가 지금 알렌 공사한테 가겠소. 그래서 당신을 즉시 빼내라고 할거요.」
    「갑시다.」

    군사가 내 팔을 끌었고 다른 군사는 총검의 끝으로 내 등을 밀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게요?」

    내가 묻자 내 팔을 쥔 군사가 대답했다. 순순히 따르는 나를 보자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져 있다.
    「난 시위 제2대대 소속 군사요. 지금은 우리 병영으로 갑니다.」

    「리, 어디로 가는거요?」
    뒤에서 셔먼이 소리쳐 물었으므로 나는 행선지를 말해 주었다.

    어느덧 지나던 사람들이 모여서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