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① 

     「선생님.」
    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여자 목소리다.

    「선생님, 저예요.」
    오선희다.
    다시 말하기 전에 알아채고 있었으므로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방문을 열었다.
    마루 끝에 서있던 오선희가 나를 올려다 본다.
    깊은 밤이었지만 눈동자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왠일이오? 어서 안으로.」

    밖은 바람까지 세어서 더 춥다. 밤 10시 반쯤 되었을 것이다.
    장옷을 벗으며 방안으로 들어선 오선희의 얼굴은 추위로 굳어져 있다.

    「아니, 전주로 내려가시지 않았소?」
    앉기를 기다려 내가 물었더니 오선희가 시선을 내린 채로 대답했다.
    「아버님께 허락을 받고 왔습니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무슨 허락을 받았는지 물으려다가 만 것이다.

    그 때 오선희가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선생님, 앞으로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것은...」

    그리고는 내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다.

    세상은 흉흉해져서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아직도 친위대 군사들은 나를 찾아 장동 집 근처를 맴돈다.
    박영효가 대군을 모아 곧 왕궁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은신처에 숨어만 있다.

    오선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아버님은 저에게 대신 몇 명의 명단을 주셨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이 부패한 왕조를 뒤엎기로 약조한 대신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박영효 일파도 아니고 러시아당도 아닙니다. 친청파는 더욱 아닙니다.」

    잠깐 호흡을 고른 오선희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이제 얼었던 피부가 녹아 두 볼이 붉어졌고 등빛을 받은 눈이 반짝였다.

    「아버님은 선생님이 그 대신들과 함께 새 조선을 세우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주에 내려가 의병을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놀랍고 감동까지 받아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선희의 부친인 전(前 ) 충주 목사 오석구는 청렴한 학자라고 알려졌다.
    그 오석구가 이토록 엄청난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가씨, 그토록 높게 평가 해주시다니 부친께 송구스럽소. 그러나 이미 나는 친위대에게 쫓기고 있는 실정이오.」
    「제가 선생님 심부름을 하겠습니다. 그럴 작정으로 온 것이니까요.」
        
    그때였다.
    밖에서 거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문 밖에서 재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으리, 친위군입니다.」

    놀란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 밖에서 문이 열리더니 재석의 머리통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으리, 친위군이 골목 끝집에서부터 수색을 하고 있습니다.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오.」
    「아니, 그놈들이 이곳까지.」

    벽에 걸린 코트를 집어 들며 내가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는 놀라 서있는 오선희에게 말했다.
    「아가씨, 어서 쪽문으로 나갑시다.」

    서둘러 마루로 나온 내가 오선희에게 말을 잇는다.
    「난 제중원으로 피신할테니 아가씨도 부디 몸 보중 하시기를.」
    「제 걱정은 마세요.」

    장옷을 머리위로 덮어 쓰면서 오선희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꼭 찾아 뵐테니까요.」

    그 때 골목 밖에서 외침소리가 일어났다.
    친위대 병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