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Lucy 이야기 ④

     밤 11시 반 정각에 스티브한테서 전화가 왔다.
    뉴욕 시간은 아침 9시 반이다. 호텔 바(bar)에서 고영훈과 술을 마시고 있던 나는 조용한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루시, 먼저 당신의 조상에 대해서 말씀 드리지요.」
    긴장한 나는 숨을 죽였고 스티브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의 어머니 이신옥은 이준구와 박수정 사이에서 태어난 무남독녀입니다.」
    내 외조부와 외조모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 두분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그때 스티브가 말했다.
    「당신의 외조부, 외조모인 이준구, 박수정의 부친, 즉 외증조부인 이정환, 외조모의 부친 박기현은 각각 1914년, 1915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군요. 거기까지가 당신 조상의 기록입니다.」
    「......」
    「도움이 되셨습니까?」
    「될 것 같아요.」

    일단은 그렇게 말해준 내가 심호흡을 했다.
    아직 이승만의 수기에 나타난 이름은 없다.
    그러나 수기는 겨우 시작 단계다.
    지금 이승만 24세때 일이니 90세에 사망 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인연이 겹쳐졌을 것인가?

    그때 스티브의 말이 이어졌다.
    「루시, LA에서 서류를 보낸 주소지의 인물을 찾았습니다.」

    나는 다시 긴장했고 스티브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Dr.K라는 이니셜로 보냈지만 본명은 김동기, 직접 찾아간 LA의 의뢰인에게 자신은 독립운동가 김일국의 후손이라고 밝혔습니다.」
    「......」
    「물론 의뢰인이 따로 조사를 했죠. 김동기는 할리우드의 뉴만 제작소라는 사업체를 소유한 억만장자입니다. 부친은 김인호, 1913년생으로 193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지만 조부 김일국의 기록은 없습니다. 루시.」

    「나한테 왜 서류를 보냈는지 이유를 물어보았어요?」
    「예, 의뢰인이 물었더니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는군요.」
    「스티브, 당신이 직접 그 사람한테 연락을 해서 내가 누구냐고 물어봐줘요.」

    스티브가 말뜻을 이해하려는 듯 잠깐 머뭇거렸으므로 내가 말을 이었다.
    「내 조상이 이승만씨하고 어떤 관계인지를 미리 알려달라고 해요. 감질나게 만들지 말고.」
    「알겠습니다. 루시.」
    「내가 이곳에 온 날짜까지 체크한 것 같은데, 테드하고의 관계까지도, 그 의도도 알아야겠어요. 아무리 억만장자라고 해도 말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하세요.」
    「그러죠. 루시.」

    스티브의 대답을 듣고 나니까 내 가슴이 개운해졌다.
    굳이 먼저 알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수기는 계속해서 보내질 것이었고 언젠가는 드러날 내 조상을 기다리는 방법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뒤를 추적해 온 김동기란 사내에 대해서 한번쯤 경고를 해 둘 필요는 있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바로 들어섰을 때 고영훈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루시양, 밤이 깊었습니다. 이젠 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의바른 고영훈의 태도를 보자 나는 와락 호감이 일어났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그대로 돌아서서 계산을 마치고는 고영훈을 로비까지 배웅해 주었다.

    고영훈과 헤어진 뒤 프론트 데스크로 다가서자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서류봉투를 내민다.

    수기가 또 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