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으로 한국을 찾은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으로 한국을 찾은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다가도 이따금씩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유희의 언어로 끊임없이 상대방을 ‘깔깔’거리게 만들지만, 자신은 곧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가 그 모습을 관찰하듯 지켜본다.  "저 사람 지금 나를 꿰뚫어 보고 있군…" 하는 감각. 그 찰나, 미묘한 생각에 휩싸이고 만다. 그의 앞에 자신을 훤히 드러낸 듯한 당혹감, 혹은 그가 자신을 확실히 지켜보고 있다는 안도감.

    자신의 이름을 내 건 토크쇼를 진행하는 MC이자,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 늘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을 것 같은 그가 허공에서 겉돌던 눈이 마주쳐도 ‘싱긋’ 웃어주는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허투로 웃지 않는 사람. 그렇기에 느낄 수 있는 진정성, 혹은 이중성.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왜 그에게 그토록 집착했는지, 그가 왜 ‘이노’일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연예계 생활 38년, 우리나라 나이로 꽉 찬 60세의 배우 쇼후쿠테이 츠루베.


    낙지볶음, 함흥냉면 그리고 설렁탕

    지난 18일 저녁 8시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어 공부에 푹 빠진 사랑스런 와이프와 오로지 ‘자비로’ 비행기에 오른 두 명의 영화 스탭과 함께.

  • ▲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밝은 공기를 만드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밝은 공기를 만드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한국 땅을 밟은 건 실로 오랜만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기도 전, TV 프로그램 촬영 차 방문했다. 음식을 소개해 주는 프로에서 낙지볶음과 함흥냉면을 먹고, 그 맛을 전했다. 일본이 아직 ‘한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그 시절.

    당시, 고려대에 다니던 마츠야마라는 학생이 통역을 맡았는데, 그의 남동생이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포수로 있다. ‘노모토’ 아주 훌륭한 선수라 한다.

    지난밤 명동거리를 걸었고, 이날은 점심도 거르고 청계천을 둘러봤다. “아뿔사, 큰일이다. 눈 앞의 호텔, 그러나 건널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 인터뷰. 이 시간이 끝나면, 늦은 점심으로 명동의 설렁탕 집을 찾아 갈거라고 했다. 와이프가 꼭 들르고 싶다고 이야기 했던 OO 설렁탕집.


    첫 주연, 여름방학 즐거운 소풍 가듯…

    ‘졸졸졸’ 소리를 내며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저에게 이노는 츠루베씨 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그는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야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달 반간의 촬영. 어렵게 얻은 여름방학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다. 이런저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촬영장.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마음이 들떴다. 즐거운 소풍 가듯.

    그는 “감독이 촬영이 진행될수록 좋은 표정을 지으며 기뻐해 나도 더 신나서 하나씩 쌓아올린 것이 목표점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 ▲ 영화 '나오코'(왼쪽부터 미우라 하루마, 우에노 쥬리, 쇼후쿠테이 츠루베) ⓒ 자료사진
    ▲ 영화 '나오코'(왼쪽부터 미우라 하루마, 우에노 쥬리, 쇼후쿠테이 츠루베) ⓒ 자료사진

    지난 2008년. 우에노 쥬리, 미우라 하루마 주연의 영화 ‘나오코’. 그는 이 작품에서 암에 걸린 감독역을 연기했었다.

    “촬영 2주 전까지 암에 걸린 역할인지 몰랐다. 얼굴은 이렇게 부어있지, 당장 살을 뺄 수도 없고…” 그가 낮은 숨을 내 뱉는다.

    즐거운 촬영이었으나, 영화에 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또한, 장기인 사람들 챙겨주기도 어려운 노릇. 주연이 아니니 너무 나서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의사 선생님’으로 반짝이는 주연을 맡았다. 말 그대로 한 작품의 ‘주역’. 그는 기름종이에 비친 그림을 따라 그리듯 통역의 발음 들으며 “주연”, “주역”을 연신 반복했다. 그 말의 ‘울림’이 너무 좋아, 벙글거렸다.

    그가 ‘주역’이었던 현장에서 그는 모든 사람이 즐거운 한달 반을 생활하기 충분한 공기를 만들어 냈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시골 의사 ‘이노’

  • ▲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좌-쇼후쿠테이 츠루베, 우-에이타) ⓒ 자료사진
    ▲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좌-쇼후쿠테이 츠루베, 우-에이타) ⓒ 자료사진

    그가 맡은 ‘이노’라는 역할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선 인물이다.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신’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영웅이지만, 실상 ‘가짜’인, ‘가짜’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거짓된 모습.

    어떻게 이노를 이해하고 연기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한번 연기해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라고 아쉬운듯 말한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노를 연기 해보기 권한다고.

    언제나 자신 스스로의 모습으로 연기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뒤가 캥긴다고 할까, 찔리는 기분이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자신과 닮아있는 모습. 그는 사람은 누구나 이노 같은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양면성.


    그건, 사랑이었네

    도리카이 부인이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른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관객은 도리카이 부인과 이노가 ‘사랑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을 자연스레 품게 된다.

  • ▲ 어설픈 한국말로
    ▲ 어설픈 한국말로 "사랑해"라며 미소짓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뀐 화면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툭 튀어나온다. 의자를 밀어뜨려 몸을 떨구는 사이몬과 황급히 그를 붙잡는 형사. 두 사람의 미묘한 거리. 사이몬은 두 사람 역시 지금 자신과 형사와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반문한다.

    ‘사랑’이란 단어를 꺼내는 기자에 그는 어설픈 한국어로 “이노랑 도리카이랑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건, 사랑이었다고.

    그는 다만, 이성에 앞서 근본적인 인간애에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했다. 아름다운 여성이기에 이성적인 감정이 들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이며.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장면, 도리카이 부인과 이노가 마주보며 ‘씨익’ 웃는 모습을 최고의 모습을 꼽는다.

    한편, 그는 에이타에게 자신이 가짜 의사라고 털어 놓으며 마주하는 부분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라 했다.
     

    숙취, 그리고 벌레. 끔찍했던 그 날.

    촬영 에피소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고 싶은 말이 단단히 있는 듯한 눈치. 그가 끔찍했던 두 가지 경험을 온 몸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 ▲ 영화 촬영 중 끔찍했던 에피소드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 영화 촬영 중 끔찍했던 에피소드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Episode 1. 숙취

    소마 역의 에이타와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신 다음날. 숙취가 가시지 않은 채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날 촬영은 영화 초반, 죽은지만 알았던 마을 할아버지가 목에 걸렸던 조개를 뱉어내며 살아나는 장면. 그는 “숙취 때문에 몸이 너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현장의 최연장자의 연기가 남아있어 쉽게 자리를 뜨기 힘든 상황. 에이타는 먼저 일어났지만, 그는 주연이라는 책임감과 함께 자신의 존재여부에 따라 현장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감안해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그 촬영이 2시까지 계속될 줄 몰랐기에.

    Episode 2. 벌레

    산 속에 있는 집에 에이타를 깨우러 가는 장면. 주변이 온통 어둠에 휩싸인 가운데, 그만이 양쪽에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자,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얼굴에 날아들기 시작했다. 본적도 없는 길이의 다리를 가진 벌레들의 공격 시작. 결국 몸 구석구석을 뜯겼다. 벌레가 너무 싫다는 그는 그 장면만큼은 혼신의 연기를 펼쳤으니 대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니시카와 감독, 그리고 에이타

  • ▲ 니시카와 미와 감독 ⓒ 자료사진
    ▲ 니시카와 미와 감독 ⓒ 자료사진

    그가 보는 니시카와 감독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이 사람이 어떻게 될까 싶을 정도로 세 번째 작품 ‘우리 의사 선생님’으로 일본 아카데미 10개 부분 싹쓸이 등 일본 내 유수영화제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주변 상황이 변해도, 늘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서 있는다. 언제든 평상심으로 있을 수 있는 굉장히 멋진 사람. 가장 어려운 보통사람.

    “에이타는 키무라 카에라랑 사귀는거 아냐?”

    그의 농담에 현장의 모든 이들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에이타에 대해 참 괜찮은 친구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과묵한.

    영화 촬영 당시, NHK 드라마 ‘아츠히메’ 방송과 더불어 마을에서의 인지도가 상승한 에이타는 어느 순간 과묵한 카리스마를 버리고 싹싹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어요”하며. 아마도, 원래부터 가슴이 따뜻한 친구였겠지….


    일본 영화의 매력은? ‘정(情)’

    “일본 영화는 정이라는 부분이 참 좋다”

    ‘우리 의사 선생님’ 촬영을 마치고 그는 ‘남동생’이란 작품에 출연했다. 완전히 다른 작품. 하지만, 그 안에 녹아든 정에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 느끼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즐거운 기분에 휩싸이게 됐다. ‘남동생’에는 알기 쉽고, 젼해지기 쉬운 표현으로. ‘우리 의사 선생님’은 직설적으로 닿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 안에 뜨거운 정이 담겨 있었다고.


    ‘정우성-전지현-배두나’, 한국 영화인에 대한 단상

    그가 본 ‘내 머릿속의 지우개’ 속 정우성은 한 마디로 ‘딱 영화배우’였다. 마치 일본의 전통적인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스타’라는 느낌. 그가 풍기는 아우라는 마치 “난 영화로만 해나갈 거예요”라고 말하는 듯한 배우다운, 그런 멋진 분위기다.

    그는 또, 한국 여자 배우로는 전지현과 배두나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특히, 배두나는 일본 아카데미에서 함께 남녀 주연상을 받은 인연이 있다. 그는 이날 배두나와 옆자리에 앉았었다며 한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놨다. 영화 파티에서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자 그녀가 그에게 음식은 언제 먹어도 되냐고 물은 것. 그는 내가 같이 먹자며 동시에 먹었더니 그녀가 굉장히 기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배우, 쇼후쿠테이 츠루베.

    ‘우리 의사 선생님’으로 일본 아카데미를 비롯해 총 4개의 남아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처음에는 장난처럼 기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 ▲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나는 원래 연기자도 아닌데…” 라는 생각. 연기자가 받아야 하는 상을 자신이 빼앗은 듯한 느낌. 신기하면서도 그만큼의 무게가 느껴지는 상이었다.

    그는 영화를 좋게 봤다는 건 자신이 그 역할을 해서 좋았다는 이야기일 테니 고마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어쩌다보니 자신이 연기했지만, 누가해도 다 남우주연상을 탔을 거라고 덧붙이며.

    몬트리올에서 쏟아진 기립박수와 함성 역시 마찬가지.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연기가 아닌 대본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전부를 연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만, 이 부분과 이 부분을 정해두고 제대로 연기해야 할 부분을 따로 떼어 놓는다. 예를 들어 혼자 7분 동안 대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제대로 연기를 해야만 하니까. 그 부분을 한 번에 OK 받았을 때는 꼭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다.

    “이곳에 도착해, 한국어로 된 포스터를 보고 진짜 한국에서 개봉되는 구나 실감했다”

    그는 사뭇 감격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우리 의사 선생님’의 한국 개봉. 제작 1년 만에 이뤄진 외국에서의 첫 정식 개봉이다.

  • ▲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 속 츠루베가 베스트로 꼽은 장면(좌-쇼후쿠테이 츠루베, 우-에이타) ⓒ 자료사진
    ▲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 속 츠루베가 베스트로 꼽은 장면(좌-쇼후쿠테이 츠루베, 우-에이타) ⓒ 자료사진


    그가 유명해져야만 하는 이유

    “지금보다 더 유명해 질거다. 그럼,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테니…”

    지난해 ‘일본에서 가장 빛나는 남성(GQ Men of the year 2009)’으로 꼽혔다. 그가 “이찌방(첫번째)” 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 장난스레 웃는다.

    그런 그가 대중한테 알려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최근에 깨달았다고 했다. 지난 38년 간 연예계에 몸담으며 셀 수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동료들을 얻었다.

  • ▲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쇼후쿠테이 츠루베 ⓒ 김상엽 기자

    대중에 알려져서 좋은 이유. 그는 “누군가가 나에게 부탁을 해올 때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거죠”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의사가 좋다거나 하는 걸 곧잘 알려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상대에게 기쁨이 되고, 스스로는 도와주는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도 더욱 유명해질 생각이다. 물론, 한국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