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숙 전 총리가 뇌물수수 혐의 재판에서 검찰의 피고인 신문을 거부키로 하면서 검찰과 변호인이 형사소송법상 진술거부권의 허용 범위를 놓고 법정에서 격론을 벌였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던 한 전 총리는 31일 재판에서도 "법이 보장한 권리에 따라 검찰의 신문을 거부하지만 법정에서 아는 한 모든 것을 성실하게 밝히겠다"며 변호인이나 재판부의 신문에만 대답하고 검찰 신문에는 불응하기로 했다.
    형사소송법 제283조의2 1항은 "피고인은 진술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며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한 쪽의 일방적 주장만 하겠다는 취지냐"며 "형사소송법 296조의2에서 피고인 신문은 검사와 변호인이 순차로 하게 돼 있으므로 검사가 신문하지 못한다면 변호인 신문도 금지돼야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검찰은 또 "개개의 신문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이면 검찰은 질문하고 피고인은 답을 하지 않으면 된다"며 "검사의 신문권과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이 충돌하는 경우이므로 어느 한쪽 권리만 인정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변호인은 "두 권리가 충돌하는 게 아니라 검찰의 신문권에 대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라며 "피의자 조사 때에도 진술거부권이 보장되는데 개방된 법정에서 피고인의 권리는 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정형사소송법의 취지는 피고인에 대한 신문이 증거조사 방법이라기 보다는 의견이나 주장을 진술하는 보충적인 절차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펴낸 실무지침서인 `법원실무제요'를 토대로 피고인을 상대로 변호인 신문을 먼저 진행하되 변호인 신문이 진행되는 도중에 검찰에서 재판부의 허가를 얻어 신문하는 방식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이 지침서는 진술거부권을 두 가지로 구분, '전반적으로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개개의 질문의 성격에 따라 답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이 이 같은 절충안을 놓고도 '검찰이 어디까지 신문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로 입장 차이를 보여 재판부는 일단 휴정해 비공개로 양측과 재판 진행방식을 협의한 뒤 오후 8시에 재판을 속개하기로 했다.
    한편 대검은 비공식 논평을 통해 "진실을 말한다면 무엇이 두려워서 검사신문을 피하느냐. 공개된 법정이고 재판부와 방청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많은 변호인의 조력까지 받고 있다"며 한 전 총리측에 신문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17세기 영국에서 진술거부권은 힘없고 박해받는 종교적 소수자의 보호를 위해 출발했는데 21세기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지도층의 진술거부권 행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며 "적어도 공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지도층은 진실을 주장한다면 당당히 검사신문에 응하는 것이 정도"라고 덧붙였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