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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를 "고급"이라며 맛있게 먹는 친구를 보면, 짓궂게 질문하는 버릇이 2년 전부터 생겼다.
"일본에서 광우병 소가 36마리 발견된 거 아니?" 대부분 "그렇게 많았어?" 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젓가락을 놓는 장면을 본 일이 없다. 십중팔구는 "그런 거 신경 쓰면 뭘 먹어?", 한둘은 "일본은 전두(全頭)검사로 다 걸러내니까 안전한 거 아니야?"란 반응이다.
전두검사란 도축한 모든 소를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다.
"다 걸러낸다고? 과학적으로 발견 확률이 20%란다. 80%는 그냥 통과하는 셈이지. 생후 30개월 미만은 발견 확률이 거의 없어. 그러니까 젊은 소, 늙은 소를 모두 검사하는 건 미련한 짓이야."
이렇게 말하면 대화가 끝난다. "많이 하면 좋지, 뭐가 그렇게 복잡해?"좀 더 설명을 하면 이렇다.
일본 정부는 전두검사가 세금 낭비란 사실을 알았다. 학계도 반대했지만 공포에 질린 여론에 밀려 일종의 '심리 대책'으로 시작한 것이다. 2008년 "더는 못하겠다"며 20개월 미만에 대한 검사 지원을 중단했지만, 이번엔 지방정부가 "우리가 하겠다"며 지금껏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 합리적으로 하다가 '불신(不信) 지역'으로 찍힐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광우병이 가장 심했던 EU(유럽연합)조차 작년부터 생후 48개월 이상만 검사하고 있다.사실 일본이 일본 소에게 뭘 하든 우리가 무슨 상관인가. 문제는 이런 비합리적 기준을 다른 나라 쇠고기에도 적용시킨 것이 아닐까 한다. 그 피해를 가장 많이 본 나라가 미국이다.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한 마리 발견되자 모든 일본 언론이 머리기사로 미국 소의 문제점에 대해 떠들었고, 농림수산 장관은 "미국에 전두검사를 요구하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전두검사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주장한 요시카와 야스히로(吉川泰弘) 도쿄대 교수는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반대로 정부의 식품안전위원회 위원 선임에서 탈락했다.일본은 지금도 생후 2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일본에서 생후 21개월 소의 광우병 감염이 발견됐다는 것이 미국 소를 배척하는 이유다. 불합리하다는 것을 일본 정부도 안다.
오로지 자국(自國) 축산 농가를 위해 무모한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36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된 사실을 1단 기사로 깔아뭉개고, 수입된 미국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됐을 땐 1면 톱 기사로 미국 소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이 일본 언론이다.다른 나라에 대해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하고서 자기 나라만 온전할 수는 없다.
지금 일본은 "GM도, 포드도 리콜했는데, 왜 도요타만…"이라고 억울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받은 만큼 갚는 게 경제와 통상(通商)의 법칙이다.
결국 도요타 파문은 세상 이치 그대로다.생각해 보면,
미국산 쇠고기를 청산가리 취급하고 수천, 수만명이 매일 데모한 나라도 있으니 일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만약 미국에서 100만 시위대가 백악관으로 몰려가 "한국차(車), 그 따위 너나 몰아라"고 외친다면 우리는 얼마나 황당하고, 얼마나 서운할까. 그렇게 당하고 그냥 참고 살까.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세상을 대하는 것. 도요타 파문을 보면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국가의 생존법을 되새겨 본다. (조선일보 특파원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