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⑩

     사건은 바로 다음날 일어났다.
    그러나 춘생문으로 들어가 임금을 빼내온다는 거사는 내부에서 호응하기로 약조했던 친위대 대대장 이진호의 배반으로 좌절된 것이다.
    당장에 검거 선풍이 불면서 이충구도 체포되었다.
    친일 내각은 눈에 불을 켜고 관련자를 색출했으므로 조선 땅은 살벌한 기운으로 덮여졌다.

    임금마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학당과 제중원을 오가면서 공부를 했고 영어와 조선어를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제중원에 있던 나에게 복례가 달려왔다.
    정신없이 달려온 듯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숨에서 쇳소리가 난다.
    놀란 나에게 복례가 헐덕이며 말했다.

    「서방님, 집에 순검이 여러명 와서 서방님을 찾았습니다.」

    옆으로 화이팅이 다가서자 복례가 주춤거렸다.
    머리를 끄덕인 나를 보더니 복례가 말을 잇는다.
    「마님은 놀라셔서 어서 서방님께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집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다친 사람은 없느냐?」
    겨우 내가 물었더니 복례는 손등으로 눈물을 씻는다.
    「예, 순검들은 집만 뒤지다가 돌아갔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알았다. 돌아가 걱정 마시라고 전해라.」

    「어디로 피한다고 말씀드릴까요?」
    「내가 인편에 말씀 드린다고 여쭤라.」
    「서방님, 몸 보중하옵시오.」
    그리고는 복례가 머리를 숙여 보였으므로 나는 심호흡을 했다.

    복례는 씨종으로 어렸을 때 부모가 죽어 나하고 같이 자랐다.
    어렸을 때 내가 업힌 기억이 있으니 나보다 서너살 위일 것이다.
    가세가 곤궁하여 여러 번 복례를 면천(免賤)시켜 내보내려고 했는데도 본인이 갈 곳 없다면서 울며 매달리는 통에 같이 산다.
    종 문서 같은 것도 없으니 나가면 당장 상민 행세를 하겠지만 겨우 박색을 면한 용모에 키도 작아서 다른 소용이 없을 것이다.

    방 한쪽으로 복례를 데려간 내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내 복례에게 내밀었다.
    뒤에서 화이팅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놔두었다.
    「이거 받아라.」
    「예에.」
    하고 복례가 두손으로 받더니 나를 보았다.

    5불짜리 미국 달라다.
    복례도 아내와 함께 미국 달라로 물품을 사봤으니 그 가치를 알리라.

    몸을 돌린 내가 책상에 놓인 붓을 들고 종이에 짧은 글을 쓴 다음에 조심스럽게 접어 복례에게 내밀었다.

    그때 화이팅이 말했다.
    화이팅은 내가 쓴 한자와 언문이 섞인 글을 읽지 못한다.
    「리, 어디로 간다는 말은 전하지 않는게 좋아요.」
    「압니다.」
    그래놓고 내가 복례의 손에 든 편지와 지폐를 보았다.

    「편지를 마님께 드리면 무슨 말씀이 계실 것이다.」
    「예에.」
    「어서 가거라.」
    「서방님.」
    다시 눈물이 글썽해진 복례가 주춤거렸으므로 내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편지와 돈 잘 간수하고.」
    「예에.」
    건성으로 절을 한 복례가 허둥지둥 방을 나간다.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는 그 5달라를 복례에게 줘 겨울옷을 사도록 하라고 적은 것이다.
    갑자기 복례의 초라한 모습이 마음에 왜 걸렸는지 모르겠다.

    그때 화이팅이 서두르듯 말한다.
    「리, 마당에 환자를 싣고 온 가마가 있으니 그걸 타고 성 밖으로 나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