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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민주주의에 있어서 국회는 자동차에 있어서 엔진과 같은 존재이다. 엔진이 작동을 멈추면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국회의 기능이 마비되면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택하고 있는 국가의 국정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그래서 의회민주주의를 폐지하려는 세력은 국회를 폐쇄하거나 장식품 같은 존재로 변질시킨다. 우리나라의 정치사는 그런 사실을 실감나게 확인해주고 있다. 
    과거 이 나라에서는 의회민주주의를 폐지하려는 세력이 군대나 경찰 혹은 정치폭력배들을 동원하여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국회를 폐지했고, 국회를 장식품 같은 존재로 변질시켰다. 87년 민주화이후 이런 일들은 자취를 감추었는데 반해 국회의원들에 의해 국회가 마비되는 일이 자주 발생해왔다. 
    외부세력에 의해서 초래되었든 국회의원들에 의해 초래되었든 간에 ‘국회가 마비되었다’는 결과는 동일하며, 국회 마비가 초래하는 국정의 혼란 효과도 동일하다. 비유하자면 타살에 의해서건 자살에 의해서건 사람이 사망했다는 결과와 효과가 동일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외부세력에 의해 국회가 마비되는 것은 극도로 흥분해서 비난하고, 국회의원들에 의해 국회가 마비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국회의원들에 의해 국회가 마비되는 것도 어쩌다가 한 번 발생하면 과도하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의 대한민국 국회처럼 국회의원들에 의한 국회 마비가 너무 자주 발생하는 것은 국민 전체가 심각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지난 2년 동안을 놓고 보면, 국회가 개회되고 나서 국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한 날 수보다 국회 기능이 마비상태에 있는 날 수가 더 많았다. 지금도 예결위원회 회의장을 야당의원들이 점거하여 회의진행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2010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할 국회의 기능이 마비상태에 있다. 

    우리나라 국회가 국회의원들에 의해 마비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국회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정당들의 잘못된 국회관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국회에 관한 제반 법률들의 오류에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과 국회법은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지 못하거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는 행동을 했을 경우 국회의원들에게 아무런 징벌을 가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희박한 준법의식을 고려하면 다른 나라에는 없는 징벌법규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다른 나라에 있는 징벌법규조차 없다. 그런 까닭에 이 나라의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들을 마음 놓고 행하지 않고, 국회의 기능수행을 방해하는 행동을 거침없이 자행한다. 

    이 나라 국회가 국회의원들에 의해 마비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헌법과 국회법에 최소한 다음과 같은 징벌조항이 삽입되어야 한다.  

    첫째, 국회가 예산안을 법정기일 내에 통과시키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해산되도록 해야 한다. 국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는 매년 정부의 예산안을 심사 통과시켜주고, 행정부의 예산집행을 감독하는 것이다. 국회가 해야 할 이런 일을 수행하지 않는 국회는 잘못 구성된 국회이므로 해산되어야 한다. 이런 조항은 의원내각제 정부형태에서 채택하고 있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국회가 법정기일 내에 예산안 통과를 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통중심제 정부형태에서라도 채택해야 한다.  

    둘째, 의안성립의 필요조건을 갖춘 의안의 상정을 방해하는 행위, 상정된 의안의 심의를 방해하는 행위, 심의기간이 종료된 의안에 대한 표결을 방해하는 행위 등을 자행한 국회의원은 당해 회기 중 국회출석을 금지하고 일정기간의 세비를 지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란 국정의 모든 문제들을 놓고 토론하고 절충하고 표결하는 기관이다. 의안의 상정을 방해하여 국회의 상임위원회나 본회의로 하여금 의안에 대한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토론과 표결을 방해하는 행위는 곧 국회의 기능수행을 방해하는 반국회적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한 국회의원들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런 행위자들의 처벌은 국회의장의 고발 절차 없이 극히 기계적으로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국회의원들의 원내활동을 감시하는 의정감독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공무원신분을 가진 다수의 의정감독관을 국회에 파견하여 국회의원들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여부와 국회의 기능 수행을 방해하고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의원이나 국회의 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의원들을 징벌 당국에 보고하도록 하고, 징벌 당국은 그 보고의 근거를 검토한 후 근거에 하자가 없으면 곧장 해당의원을 징벌하도록 해야 한다.  

    이 3가지 조항만 법규화 되면 국회의원들에 의한 국회의 마비는 방지될 것이며, 이 나라의 의회민주주의는 매우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작동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조항들을 법제화하려면 헌법과 국회법 등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 개정은 국회의원들만이 할 수 있으니, 그것이 문제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구속할 그런 사항들을 헌법이나 국회법에 삽입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내용의 법률개정을 촉구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