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승은-허현선의 인형 '엄마 어렸을 적에'. ⓒ 뉴데일리
    ▲ 이승은-허현선의 인형 '엄마 어렸을 적에'. ⓒ 뉴데일리

    “어머니. 올 추석은 못 내려갑니다. 죄송해요.”
    대학가 한 선술집. 마주앉은 친구는 차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합니다.
    “집사람이랑 아이는 보내려고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네요.”
    눈물에 더 대화를 못 잇는 전화기를 제가 넘겨받았습니다.
    “난 괜찮다고 해라. 설에 와도 된다고 전하고…. 몸만 건강하면 된다고 해라. 난 괜찮다…. 괜찮아.”
    수화기 너머 친구 어머니는 “괜찮다…. 괜찮아.”라고만 되뇌이십니다.
    하지만 압니다. 어머니 두 눈 벌써 눈물 한 가득 고이셨을 것을.

    명문대를 나와 초일류기업에서 잘나가던 친구는 명퇴 바람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한동안 사업을 한다고 분주히 돌아다니더니 가진 돈마저 다 써버린 모양입니다. 아직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는 남매를 둔 친구는 무슨 일이든 해보려고 하지만, 만만치 않은 나이의 그를 받아줄 회사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고향의 어머님이 너무 뵙고 싶지만 선뜻 발걸음 내키지 않는 친구는 그래서 모두 고향에 내려간 서울의 한 선술집에 저를 불러냈습니다.

    길고긴 경기침체였습니다.
    제 친구 같은 나이가 아니더라도, 젊은 층의 고통 역시 심합니다. 지난 봄 대기업에 최종합격했다고 소식을 알려온 한 대학 졸업생은 일주일 뒤 “신입사원 채용 자체가 취소되었다”고 울먹이며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회에 내딛는 첫걸음부터 커다란 상처를 입은 그 학생은 일주일을 방안에 틀어박혀 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역시 취직이 안 된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부모님 뵙기 민망해’ 귀성표를 사지 못 합니다. 그리고 고향의 부모들은 ‘돌아오지 않는 아이’가 안쓰러워 가슴이 까맣게 탑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어렵습니다.
    저마다 가슴에 안은 사연들은 흘려도 흘려도 눈물 마르지 않을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지금의 중년들 역시 절망스런 가난의 기억들을 많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돈 벌려고 서울 울라간 누나는 시내버스 안내양을 하거나 봉제공장에 취직을 합니다. 매연 속에서, 실 먼지 속에서 몸 상해가며 번 돈으로 시골 동생은 대학을 다녔습니다. 불과 몇 십년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아, 자장면!
    살림 옹색했던 저 역시 갑자기 비 내렸던 어느 날, 학교 정문에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신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간 중국집이 첫 외식이었습니다. 아, 그때가 중학교 3학년 때이던가요….
    그 기억은 아직 제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자장면을 먹다 눈시울 시큰해지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제 어머니도 이젠 많이 늙으셨습니다.

    빛이 안 보이는 어려움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의지할 곳은 가족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하느님이 모든 자리에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말하듯, 어머니는 가족들은 우리 삶의 영원한 쉼터입니다. 그리고 끝없이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고마운 이들입니다.
    마주 앉은 친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괜찮다…. 난 괜찮아.”라고 전해달라고 끝없이 되뇌이셨습니다.
    “괜찮다…. 괜찮아”
    어머니는 친구에게 “내 걱정 말고 용기 내라”고, “다시 일어서라”고 말씀하신 것일 겁니다.

    한가위를 맞는 저녁, 고향집이든 타향의 선술집이든 모두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고 그 정겨운 모습들에서 용기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아픔입니다. ‘부재(不在) 때문에 아프다면 더 자신을 낮추십시오. 진정 내 스스로의 삶을 사랑했는지 돌아보고 내 사랑 조금 주고 많이 받으려고 바라지 않았는지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아픈 그만큼 스스로를, 가족을 더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불황의 긴 터널 끝이 보이는 올 한가위. IMF도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3.6%로 상향 전망하고 있습니다.
    올 추석, 가족들과 희망을 이야기하십시오. 사랑을 이야기하십시오. 그 작은 행복 바이러스들이 모여 보다 나은 내일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