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김정일이 다자회담과 양대화에 다 임하겠다고 했다.왜 그렇게 금방 태도를 표변했을까? 6자 회담은 영구히 끝났다, 남북간에 맺은 모든 협약은 무효다, 어쩌고 하며 게거품을 물고 발광하던 게 불과 몇 달 전이라고 이렇게 빨리 딴 소리를 하시나 그래. 사정이 꽤나 다급했던 모양인가?

    김대중 노무현이가 지난 10년 동안 김정일 버릇을 잘못 드려도 너무 잘못 드려 놓았다는 게 이것으로 입증되었다. 김-노 두 사람이 사사건건 오냐 오냐 해 준 탓으로 김정일은 “공갈치면 떡 나온다”는 뗑깡을 아주 습성화 해 버렸다. 남한 정부와 국민들도 ‘김정일 공갈=전쟁’ “김정일 거스르면=전쟁하자는 거냐?”의 조건반사를 이슬비에 옷 젖듯, 은연중 잠재의식에 입력할 정도까지 갔었다, 딱히 좌파가 아닌 사람들도 납치범에게 마조키스트(피학대 쾌감증)적인 투항과 동조를 하는 병(病), 스톡홀룸 증후군에 빠지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가 김정일의 그런 ‘땡깡 한 탕 치고 장땅 잡자“는 상투적인 전술과 ”김정일이 저러는 건 미국과 남한 탓“이라는 한국 좌파의 뒤집어 씌우기 전술에 꿈쩍도 안 하자, 김정일은 ”아니면 말고….” 식(式) 좌파 특유의 표변 전술로 나온 것이다. 밀어서 밀려 주면 전진하고, 밀어도 밀려 주지 않으면 후퇴하고…. 공산당 수법 어디 하루 이틀 봤나?

    핵심은 이것이다. 전쟁을 하든 협상을 하든, 좌우간 공산당은 이쪽이 월등한 힘에 의거해서 강하게 나가면 움찔하고, 힘이 있건 없건 이쪽이 지레 주뼛 주뼛 나약하게 나가면 “왕!” 하고 잡아먹으려 한다. 바로, 깡패 식이다. 깡패는 자기보다 힘이 월등히 더 센 상대방에 대해서는 섣불리 먼저 도발하지 않는다.

    김대중 노무현은 이런 판세를 뒤집으려고 김정일에게는 힘 주기(돈과 편들기)를 했고, 반면에 남쪽에 대해서는 힘 빼기(김정일이 하자는 대로 안 하면 전쟁 난다)를 했다. 그 결과 김정일+김대중+노무현+주사파 운동권은 ‘햇볕’을 무기로 삼은 전(全)한반도의 좌파적 현상타파와 대한민국 허물기 작전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김정일은 이명박 정부 이후에도,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 이후에도 이 수법이 계속 먹혀들지 어떨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핵 공갈, 개성공단 유성식 억류, 금강산 관광객 사살 등, 몇 차례 ‘땡깡’을 시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불통(不通)이었다. 계산에 빠른 깡패 김정일이 이 불통의 '왜?'를 간파하지 못했을 까닭이 없다. “응, 안 통하는구먼, 아니면 말지 뭐….” 이것이 김정일이 다자회담, 양자대회에 다 나가기로 한 표변의 ’웬 일로?"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은 죽기 직전에 “분하고 원통하다”고 말했다. 뭐가 그렇게 분하고 원통했을까? 아마도 ‘DJ 식(式) 햇볕’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만드는 한-미 양쪽의 달라진 원칙주의적 자세를 의식한 비명이었을 것이다. 김대중의 이런 고지식한 외곬에 비한다면 김정일의 낯 두꺼운 뻔뻔 표변전술은 그래도 DJ보다는 한 수, 두 수, 열 수 위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기야 열 수 위니까 김대중이 그간 그런 행보를 취하게끔 상황 조작을 했겠지.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이번에 터득한 이 교훈을 앞으로의 길고도 지루한 대화 과정에서 한 순간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