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데뷔무대인 만큼 단단히 준비한 모습이었다. 6선 정치인임에도 정당활동 경험이 적어 말주변이 없다는 평을 듣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8일 대표 취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단점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 ▲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가 8일 오전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앞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가 8일 오전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앞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준비한 회견문도 길지 않았다. "2007년 정권교체를 위해 오랜 무소속 생활을 접고 한나라당에 입당했을때, 작년 총선에서 정치적 고향인 울산을 떠나 서울 출마를 결심했을 때도 이렇게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 말로 현 심경을 밝혔고, 박근혜 강재섭 박희태 등 전임 대표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업적을 평가한 반면 자신의 몸은 낮췄다.

    정 대표는 말하나 행동하나에 최대한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입당 1년 9개월만에 집권여당 대표를 꿰찬 만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읽힌다. 회견내내 시종일관 저자세를 보이고 고개를 숙이는 등의 모습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회견문 낭독 뒤 이어진 기자들의 모든 질문에 정 대표는 "168명의 의원들과 상의해 노력하겠다" "좋은 의견 있으면 말씀해달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상답변도 이미 갖고 있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친이·친박 계파갈등 속에서 당 운영 방안은 무엇이냐", "당·청관계가 청와대에 종속적이란 비판이 있고 정 대표로 그런 점을 비판하곤 했는데 앞으로 당청관계 정립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재벌출신인데 정부의 서민행보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내각에는 정운찬 총리, 당에는 정몽준 대표가 올라가면서 차기 대권구도가 다양화됐는데 정 대표 개인으로도 유리한 기회라 생각하는가"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정 대표는 흔들림 없이 차근차근 답했고 정치적 공격이나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발언을 하지 않으며 마무리 했다.

    특히 "재벌출신"이란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도마위에 오르자 6·25전쟁 피난 당시 찍은 가족사진 두장을 공개하며 "어릴적 사진이지만 그때 분위기가 아직도 살아있고 그 기억을 소중히 한다. 우리나라의 평범한 가정, 상대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적극 방어하기도 했다. 그가 대표 취임 첫 일정으로 서울 노량신 수산시장을 찾아 친서민행보를 보인 것도 '재벌출신' 이미지 불식 차원으로 풀이된다. 

    주변에선 "몸조심 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결국 첫 데뷔무대인 기자회견에 대한 평은 "무난히 잘했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국회의원 6번째 만에 제대로 된 둥지를 찾았다. 제대로 된 정치기반이 없던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정 대표도 "한나라당에 중요한 인물이 4~5명은 돼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 아닌가 한다"며 자신의 대권 꿈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정 대표 앞에 당면한 문제는 많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로 인한 보수층의 반감을 해소하고, 대기업 오너로 '재벌'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씻어낼지, 당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고착화 된 현 친이·친박의 구도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어떻게 내릴 지가 그에게 주어진 과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