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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도 서울대 경영학 교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국무총리 내정에 대해 야당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 야당 의원은 "양복바지에 한복 상의를 입힌 것"이라며, 향후 정 내정자는 현 정권과 잦은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한때 민주당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정운찬 내정자가 사상적 변절을 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의원도 있다.
정운찬 총리 내정으로 향후 정국에 여러 변화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상황이 더욱 악화된 야당은 일단 정 내정자의 발언이나 경력을 문제 삼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이런 소극적 대응보다 정 총리 입각을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 강력한 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위대한 조직 곁에는 항상 위협적인 경쟁자가 있다. 집권 정부를 항상 긴장시키는 강한 야당이 없는 국가는 정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토인비는 카르타고의 패망이 로마 멸망의 시작이라고 했다. 로마의 강력한 경쟁국이었던 카르타고가 몰락하자 로마는 오만과 나태에 빠져 버렸다는 것이다.
기업 경쟁에선 유사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코카콜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일등 기업이다. 브랜드 평가기관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2008년 코카콜라 브랜드 가치는 667억달러(약 80조원)로 세계 일등이다. 일개 음료 회사가 세계 유수 기업을 제치고 최고 브랜드로 선정된 이유는 펩시콜라라는 강력한 경쟁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강력한 2인자가 있었기에 코카콜라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33년 코카콜라는 경영난을 겪던 펩시콜라를 헐값에 인수할 기회가 있었지만 전략상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후 펩시콜라는 성공적으로 재기해 코카콜라를 계속 괴롭히자 코카콜라 경영자는 당시 인수 포기를 후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난 당시 코카콜라가 펩시를 인수했더라면 오늘날 코카콜라는 평범한 기업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비슷한 교훈은 많다. 그러나 우리 야당이 강한 당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결별해야 한다. '성공의 덫(success trap)'이란 경영학 개념이 있다. 과거 성공 전략에 집착한 기업이 새로운 기술이나 경영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도산에 이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모델 T로 한때 미국 자동차 시장을 평정했던 포드자동차가 소비자 환경 변화를 읽지 못하고 GM에 일등 자리를 내준 경우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정당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재타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같은 과거 성공 모델로 변화된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일관되고 차별화된 정책을 세워야 한다. 건강·미용제품 중 최고 브랜드로 평가받는 타이레놀의 성장 역사가 시사점을 줄 것이다. 타이레놀이 진통제 시장 진입을 고려했을 때 미국엔 이미 바이엘 아스피린이란 강력한 선도 진통제 브랜드가 있었다. '뛰어난 진통 효과'란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한 아스피린과 경쟁하기 위해 타이레놀은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가 필요했다. 일부 아스피린 복용자가 위 통증과 같은 부작용을 호소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타이레놀은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는 진통제'로 타이레놀 이미지를 구축하는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다.
차별화된 국가운영 철학을 설정하는 일은 야당에 특히 중요하다. 야당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이 절실히 원하지만 현 정부가 충족시키지 못한 이슈를 발굴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청년실업과 같은 문제가 그 예일 것이다. 사실 국가운영 철학 부재가 현 정부의 최대 취약점이기 때문에 야당이 정책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당이 발의한 법안에 시위나 하는 정당이란 인상을 더 이상 국민에게 심어주지 말아야 한다.
셋째, 설정된 국정철학에 부합되는 외부 인재를 과감히 영입해야 한다. 이 점에서 야당은 정운찬 총리 내정의 일을 냉정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유능한 인재의 영입은 여당에 유리하다. 그러나 야당엔 국가운영 철학의 진취성 및 미래지향성이란 매력이 있다. 즉 국가 발전에 영혼을 바치겠다는 순수한 인사들이 외면하는 야당은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1957년 세계 500대 기업 중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기업 수는 약 3분의 1 정도라 한다. 일등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수많은 혜택을 고려하면 기업 수명이 참 짧다는 생각이 든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이 몰락하는 첫 단계로 성공에 대한 자만심을 들었다. 정당의 정치적 생명도 원리는 같다. 우리 국민 모두는 집권 여당을 끊임없이 긴장시킬 수 있는 위대한 야당의 탄생을 열망할 것이다. 권력의 속성상 여당은 자만과 나태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