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정국 이후를 겨눈 한나라당과 민주당 각자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9월 정기국회가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민주당 국회 등원 문제와 이명박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제시한 선거제도.행정구역 개편, 10월 재보선 등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다.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 서거에 조의를 표하면서 정치공세를 자제하는 '침묵모드'를 유지하고 있으나 민주당에 국회 등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난 다음날인 24일부터 민주당과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21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의회주의자이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해온 분"이라며 "민주당도 고인의 뜻을 받들어 영결식이 끝나면 국회로 돌아오길 바라고, 다음주 월요일(24일)부터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협의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빈소와 영결식 장소를 최초로 국회로 결정한 점도 민주당 장외투쟁 중단에 명분을 주고 정기국회 등원을 위한 의도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민주당 입장은 다르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안 원내대표가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왜곡하고, 민주당에 '다음 월요일부터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협의할 것을 요청한다'며 정치공세를 폈다"고 펄쩍 뛰었다. 

  • ▲ 민주당 정세균 대표 및 지도부가 지난 19일 서울 광장에 설치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정을 들고 들어오고 있다 ⓒ 뉴데일리
    민주당 정세균 대표 및 지도부가 지난 19일 서울 광장에 설치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정을 들고 들어오고 있다 ⓒ 뉴데일리
    민주당은 지난 18일 DJ타계 후 미디어법 관련 장외투쟁 등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상주를 자처하며 서거정국 분위기에 힘을 쏟고 있다. 민주당의 뿌리가 DJ인 점도 무시 못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향한 비난 구호로 '민주주의 후퇴 민생후퇴 남북관계 후퇴'를 내건 민주당이 생전 '민주주의 의회주의'를 강조했던 DJ의 상주를 자처해 향후 정국을 이끄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마냥 등원을 늦출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DJ는 타계 두달 전인 6월 초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야당을 하면서 등원하지 않고 성공한 적이 없다"면서 "수십년 나의 경험과 의회주의 원칙을 보더라도 국회는 오래 비우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 바 있다. DJ의 심복인 박지원 정책위의장도 '주국야광'(晝國夜廣.낮에는 국회, 밤에는 광장)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며 "야당의 강력한 투쟁장소는 국회다"고 말해 원내외 병행 투쟁을 주장해왔다. 박 정책위의장의 이같은 주장은 DJ타계로 더 힘을 얻어 결국 민주당 원내복귀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내에서도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등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민주당이 장외투쟁과 조문정국에 힘을 쏟은 상황이라 국정감사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9월 정기 국회에 주도권을 여당에 뺏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 민주당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