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나와 지만이는 성규를 남자로부터 떼어놓아야만 했다. 이대로 그냥 놓아두었다가는 남자가 화를 참을 수 없게 되고 그러면 큰 싸움으로 번질 게 확실했으므로, 당연하고도 필요한 조치였다.

    그러니까 성규의 행동의 대강은 이해가 되었다. 성규는 그의 도망간 몽골 아내가 남자와 함께 몽골 타운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방금전 보았고, 그래서 남자에게 다가온 건데, 그녀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남자에게 그녀의 행방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성규가 진짜 그의 아내, 오르그뜨가 남자와 함께 몽골 타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았는지 의심스럽고, 보았다 하더라도 남자에게 대뜸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네 놈이지. 네 놈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우리 와이프를 꼬셔 달아난 그 놈이지."

    남자로부터 성규를 떼어놓는데 성공하긴 하였지만, 남자로부터 떨어진 성규가 남자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저거, 저거, 미친 놈 아니야."
    "이 자식 시치미를 뚝 따겠다는 거지. 더러운 놈. 내가 이 두 눈으로 다 봤는데. 너 오늘 맛 좀 봐라."

    다음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을 향해 움직여가고 있었다. 성규가 나와 지만이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다시 남자에게로 달려갔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먹을 움켜쥐고 때릴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너 이 자식. 불법체류자지. 불법체류자인 주제에 남의 와이프를 꼬셔내. 남의 나라에 와서 불법체류하면서 일을 하면 조신한 맛이 있어야지. 더 나대 나대길. 그러고도 니가 온전할 줄 알아."

    실제로 성규는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남자가 성규의 주먹을 맞고 휘청였고,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나왔다. 성규가 왜 이러는지, 정말이지 난감했다. 성규가 남자와 함께 있는 자신의 도망간 아내를 보았다 하더라도 이러는 건 지나친 오버였다. 게다가 남자는 그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는 거다. 우리조차, 성규의 말 보다는 남자의 말에 외려 더 신빙성이 간다는 것이었다.

    몽골 타운의 몽골 사람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몽골 사람들은 성규가 남자를 향해 내지른 소리도 들었고, 성규가 남자를 향해 휘둘러댄 폭력도 목격했다. 몽골 사람들이 성규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와 지만이에게 몽골 사람들의 분노가 생생하게 전달되어져 왔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나와 지만이는 어서 빨리 몽골 타운을 벗어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정작 성규는 무감각한 듯 했다. 몽골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큰 일이었다.

    맞은 남자는 기대한 대로 가만 있지 않았고, 갚음을 했다. 성규가 남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성규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고, 그 충격으로 성규가 서너 발짝 뒤로 밀렸다. 그러나 성규의 입술은 터지지 않았고, 피가 나진 않았다. 서너 발짝 뒤로 밀려난 성규의 자리는 다행히도 나와 지만이의 앞이었다.

    남자를 향해 다시 뛰쳐나가려는 성규를 나와 지만이가 가까스로 제지했다. 그리고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남자를 향하기는 하였지만, 우리가 외친 대상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몽골 사람 전체를 향해서였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미안합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친구를 데리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미안합니다."

    우리가 사과를 했지만 남자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우리를 둘러싼 몽골 사람들의 분노도 가라앉지 않았다. 뇌관을 건드리기만 하면 그건 여지없이 터져 폭발할 게 틀림없는 일이었다.

    성규가 우리의 손 안에서 버둥거렸다. 철저하게 성규의 저항을 저지해야만 했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실패하면, 성규는 우리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그 뇌관을 건드릴 테고, 그 후의 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일 터였다.

    성규를 데리고 몽골 타운을 빠져나오는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가까스로'라고 하였는데, 정말이지 가까스로였다.

    일단은 성규가 우리의 손아귀 안에서 발버둥댄 탓이었다. 이대로는 몽골 타운을 못 나가겠다 고. 저 자식과 한 판 붙어야겠다 고.

    몽골 사람들의 험악한 기세도 문제였다. 성규가 자신들의 동료에 대해 폭언을 하고 폭력을 휘두른 데에 대해 몽골 사람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성규의 폭언과 폭력이 그들의 어떤 집단 의식, 민족 감정을 건드린 듯 했다. 그 분노한 집단의 민족감정을 뚫고 아무 일 없었단 듯이 몽골 타운을 빠져나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규를 데리고 몽골 타운을 빠져나오는데 가까스로 성공하긴 하였지만, 그러나 일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더 큰 일은 그 다음이었다.

    몽골 타운의 몽골 사람들은 우리, 나와 지만이와 성규가 나갈 틈을 열어주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우리를 곱게 보내줄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우리가 몽골 타운을 빠져나오는데, 상당수의 몽골 사람들이 우리 뒤를 쫓았다. 그들이 왜 우리 뒤를 쫓아나오는지 난감했지만, 그 이유가 의심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분노했다는 것이었다. 성규가 자신들의 동료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몽골 민족 전체를 모욕했다는 것이다.

    나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만이 그랬던 건 아니었을 거였다. 지만이의 등줄기에서도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을 게 틀림없는 일이었다. 한 민족을 모욕한다는 건 너무 큰 일이었다.

    성규의 등줄기에서는....모르겠다. 성규는 몹시 화가 나 있었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이 정상에서 좀 비껴나 있어서,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아니, 아니다. 그게 식은땀인지는 모르겠으나 성규의 등줄기에서도 그 때 그 시각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나와 지만이의 손아귀에 잡혀 강제로 끌려나오는 성규의 등줄기가 흥건히 젖어 있었으니까.

    "튀어."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렇지 않다. 분명히 기억한다. 그건 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우리를 뒤따라나오는 몽골 사람들이 두려웠고, 몽골 타운을 완전히 빠져나왔는데도 여전히 몽골 사람들이 우리를 뒤따르고 있다는 게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은 예감이었고, 몽골 사람들의 추적을 따돌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몽골 타운 밖으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외쳤던 것이었다. '튀어' 라고.

    물론 내가 외친 '튀어'는 지만이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성규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성규는 여전히 정신이 나가 있어, 성규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하더라도 그건 헛수고였다.

    나와 지만이는 여전히 성규를 잡고, 나는 성규의 왼팔을 지만이는 성규의 오른팔을 잡고, 튀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달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해도 너무 늦은 속도로 달렸는데, 그런 늦은 속도로 달리면서도 튄다고 말하는 것은 썩 쑥쓰러웠기 때문이었다.

    성규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어서 전혀 튈 생각이 없고, 전혀 튈 생각이 없는 성규를 데리고서는 우리는 기껏해야 달릴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달렸다. 달릴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달렸다. 방향은, 알 수 없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달렸다. 그냥, 필사적으로 달렸다.

    몽골 사람들이 달아나는 우리 뒤를 쫓았다. 몽골 사람들은 끈질겼다. 정말이지 끈질긴 민족이었다. 칭기즈칸의 후예다운 끈질김이었다.

    동료가 자기 눈 앞에서 얻어맞는 걸 보는 건 분명 기분나쁜 일이겠지만, 몽골 타운을 빠져나와 달아나는 우리를 여전히 쫓을 정도까지는 아니지 싶었다. 

    지나치다는 생각이었다. 성규가 정도를 벗어난 것처럼 이 사람들도 정도를 벗어났다는 생각이었다. 정도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걸리는 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두려웠다. 정도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잡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우리는 죽어라고 달렸다. 속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지만, 있는 힘껏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종로 오가 대학로 입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그러자 하지 않았으나 달리기의 속도를 줄이고 있었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뒤에서 사람들은 오고가고 있었지만, 우리를 쫓는 몽골 사람들은 없었다.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쫓다 지쳐 되돌아간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우리를 쫓지 않았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안 쫓아오잖아요."
    "그러게."

    우리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몽골 사람들이 우리 뒤를 쫓다 지쳐 혹은 화가 풀려 되돌아간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우리를 쫓을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쫓지 않은 건지에 대하여.

    그러나 우리는 대강 결론을 내리고 있긴 했다. 나는 몽골 사람들이 우리를 쫓다 지쳐 혹은 화가 풀려 되돌아갔다는 결론이었고 지만이는 애초부터 몽골 사람들은 우리를 쫓을 생각이 없었고 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럼 왜 달아난 거야."
    "그야 형님이 튀라고 해서…"

    그제서야 숨이 차 왔다. 숨이 찬 게 느껴졌다. 몽골 사람들이 우리를 쫓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긴장이 풀린 탓 같았다 따져보면, 많이 뛴 셈이었다. 동대문운동장 옆 광희동에서 종로 오가 대학로 입구까지 쉬지않고 한달음에 달려온 거니까.

    지만이 성규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성규에게 묻고 싶은 물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성규는 여전히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여전히 허튼 정신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그 놈이 오르그뜨를 데리고 들어왔었어. 그런데 어따 숨겨놓은 모양이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잖아."
    "네가 잘못 본 거야. 그 사람은 내내 혼자였어."
    "아냐. 그 놈이 내 오르그뜨를 훔쳐 달아난 놈인 게 분명해. 난 잘못 보지 않았어."

    성규는 진짜 오르그뜨, 그의 도망간 아내를 보았는지도 몰랐다. 남자가 진짜 오르그뜨를 데려왔고, 성규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추어버렸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성규가 남자에게 욕을 해대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잘못이었다. 같은 몽골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자리에서 그랬다는 건 더욱 큰 잘못이었다. 성규가 오르그뜨, 그의 도망간 아내를 진정으로 되찾을 요량이라면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알아야 했다.

    몽골 사람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하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도망간 아내 오르그뜨 역시 몽골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