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대표팀은 지난 대회 4강을 훨씬 뛰어넘는 준우승을 거두었다. 비록 숙명의 라이벌 일본에게 아쉽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 의미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봉중근-류현진-윤석민-정현욱 등 투수진이 일본 강타자들과 메이저리거들을 농락시키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김태균-이범호-추신수-이진영 등은 결정적 순간에 홈런포를 터뜨리면서 '스몰볼'이라는 아시아 야구의 이미지에서 한국이 완전히 벗어나게 했다. 

    이번 대회에 임하는 대표팀 구성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은 대단히 상반되는 행보를 보였다. 

    일본은 센트럴리그 2년연속 우승의 주역 하라 다쓰노리(原辰德)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을 WBC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하기 위해 일본프로야구협회 지도부는 물론 야구계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夫) 전 요미우리 감독 및 왕정치(王貞治) 전 소프트뱅크 감독 등을 총동원하여 전방위 설득에 나선 끝에 일본 야구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인선을 관철시켰다. 

    이에 반해 한국은 2008 프로야구 우승팀 SK 김성근 감독과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 사령탑인 두산 김경문 감독으로부터 모두 거절당한 것은 물론, 포스트시즌 진출팀인 선동렬 삼성라이온즈 감독에게까지 딱지를 맞았다. 그러다보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도 못했던 한화의 김인식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기존 구단들의 소극적 자세로 현역 코치들의 합류가 무산된 가운데 김성한, 양상문 등 감독 출신 야인(?) 코치들을 대거 뽑을 수밖에 없었다. '베스트오브베스트'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인식 감독이 3년전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WBC 4강의 위업을 이룩했던 만큼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명장'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야구계가 이번 WBC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라는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은 분명 일본에게 판정패한 셈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WBC 우승의 주역이었던 마쓰자카와 이치로가 모두 건재했던 반면, 한국은 박찬호와 이승엽이 빠진 채로 이번 대회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회에 큰 활약을 펼친 김태균, 이범호, 봉중근, 윤석민 등이 WBC 경험이 없는 가운데 지난 대회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김동주, 이종범, 박진만 등이 빠진 가운데 국제대회 경험이 적은 젊은 선수들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김광현, 류현진, 이용규, 김현수, 고영민, 강민호, 이대호 등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들이 있었기에 좋은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일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고참 선수들이 몇명이라도 있어서 신구조화를 이루었다면 훨씬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차이가 난 것일까? 아무래도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것이 일본 야구계와 야구팬들의 정서에 큰 자극과 충격으로 다가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은 똘똘 뭉쳐서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심벌을 만들어냈고, 한국은 '베스트오브베스트'를 꾸릴 겨를도 없이 올림픽 대표팀에 '플러스 알파'를 거의 얹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에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승부에 대한 열망'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일본팀은 과거와 확실히 달랐다.

    하라 다쓰노리를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일본 야구계가 가와카미테츠지(川上鐵治)-나가시마시게오-하라다쓰노리로 이어지는 일본 야구계의 적장자를 내세워 이번 WBC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완벽한 명분 속에서 '베스트오브베스트'를 구성했기 때문에 일본인들 정신세계 속 우상인 '사무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결승에서 만일 일본이 한국에게 패배했다면 이것은 엄청난 충격과 후유증으로 일본열도를 뒤흔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일본 대표팀을 상대로 한국의 젊은 선수들은 3번의 결정적 순간 중 2번을 승리하며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다음 WBC 대회에서 이들의 더 큰 활약상을 기대하게 된다.

    대한민국 대표팀, 정말 잘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