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를 맞아 정치권이 내놓은 사자성어는 각각 이해관계를 함축해 대변하고 있다. 고사에 근거한 그 해의 사자성어는 각 정파가 품고 있는 희망과 처해진 상황을 멋스럽게 설명한다. 2009년 정치권의 사자성어는 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단합과 함께 10년만의 정권교체 이후 나라 바로세우기에 대한 희망을 주로 상징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서(周書) 이기전(李基傳)에 나오는 '부위정경(扶危定傾, 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 잡고 나라를 바로 세우다)'을 선정했다. 경제위기에 처한 대한민국호를 바른 길로 인도해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이 대통령이 뜻에 잘 부합한다고 판단해 선정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다난흥방(多難興邦)'역시 위기극복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 '많은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야 나라를 일으킨다'는 뜻으로 집권 첫 해 촛불시위, 미국발 금융위기 등 험난했던 여정을 넘어 국가 선진화에 매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정권의 명운이 걸렸다고 할만큼 주요한 집권 2년차의 각오도 읽힌다.

    대구를 방문한 박근혜 전 대표는 소의 해 기축년을 맞아 '우보만리(牛步萬里)'를 언급했다. 박 전 대표는 "우보만리라는 말처럼 올해 한 걸음 한 걸음으로 경제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루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소 걸음으로 만리를 간다'는 뜻으로 박 전 대표의 향후 정치행보와 맞물리면서 묘한 뉘앙스를 전한다.

    반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강한 사자성어를 택했다. 정 대표는 '상찬난기(上蒼難欺)'와 '분붕이석(分崩離析)' 두가지를 내놨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치정(治政)편에 나오는 상창난기는 '위에 있는 푸른 하늘은 속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당나라 태종이 벼슬아치들에게 백성이 잘 살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여야한다고 훈계한 데서 비롯됐다. 또 논어에 나오는 분붕이석은 '나라가 나뉘고 무너지며 민심이 이탈되고 단절됐다'는 의미에서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책임'을 정부에 두면서 '훈계'하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풍운지회(風雲之會)를 골랐다. '밝은 임금과 어진 재상이 서로 만나 기운을 얻는다'는 것과 함께 '용이 풍운의 힘을 입는 것과 같이 영웅이 때를 만나 큰 공을 세운다'는 두자기 뜻이다. 위기의 국가가 기운을 얻고, 동시에 선진당도 세력이 확대되길 기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 이름의 '회(會)'자가 담겨 눈길을 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도 '돌밭 같은 험난한 세상을 소처럼 갈아엎는다'는 뜻의 '석전우경(石田牛耕)'으로 거들었다. 힘겹게 총선을 통과한 후 지난해 광우병 괴담으로 인한 촛불시위로 주가를 올린 강 대표의 입장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는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를 제시했다. '세찬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강한 풀임을 안다'는 의미로 경제 한파 극복 의지를 표현했다. 동시에 서 대표의 힘든 정치적 상황도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