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정치권의 눈은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 쏠렸다.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점거하며 여야 극한 대치상황을 만든 후 제1야당의 사령탑이 제시할 해법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도 손발이 안맞는 형국이다. 정 대표가 27일로 예정했던 국회정상화를 위한 중대 제안 발표를 잠정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은 당 대표실에서 "정 대표가 내일 오후 2시에 국면 타개를 위한 중대제안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민주당은 두시간 반만에 그 말을 뒤집었다.

    같은 날 오후 4시 30분, 최 대변인은 같은 장소에서 "여야 극한충돌 상황에서 MB악법 저지를 위한 정 대표 구상을 말씀 드리겠다고 발표했는데 한나라당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최 대변인은 그 책임을 한나라당에 떠넘겼다. "(한나라당이)전혀 진척된 변화 상황을 볼 수 없어서 각오든, 내용이든 이야기는 하는 것을 미뤄야 한다"는 게 그 이유다.

    두 시간 반 만에 입장을 바꾼 데 대해 기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최 대변인은 "(한나라당의)상황 변화가 지금 전혀 없잖느냐"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정 대표 제안 내용이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아까 2시에 내가 말할 때도 내용은 모르겠다고 하지 읺았느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최 대변인은 "(정 대표가 제안을 발표하면) MB악법 저지의 배수진을 친 상황에서 우리 전략을 위축시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었다"며 "(정 대표가)결심을 얘기하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득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극한 대치 상황에서 제1야당의 이같은 입장 번복은 비판 여지가 크다. 더구나 국회파행이 일주일이 넘어가는 시점에 당내 여론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은 카드를 꺼냈다가 슬그머니 입장을 바꾼 데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최 대변인은 "시점에 대한 해석으로 이해해달라"면서 "시기선택의 문제로 인해 유보했다"고 말했다. 이는 자당의원 54명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지만 한나라당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황인 데다 정 대표의 협상안 제시가 자칫 민주당 의원들의 사기저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 전체 판단이 아닌 정 대표 개인의 의견을 섣불리 말했다가 당내 분열이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경색된 여야 관계에 염증이 난 국민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민주당의 걸음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