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약체 정권이 최약체 야당과 만났을 때'입니다. 네티즌이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약체 정권이다. 집권 첫해 지지율이 노무현 정부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10명 중 2명 남짓, "못하고 있다"가 10명 중 6명 정도다.

    정권이 힘이 없으면 야당에 휘둘리는 법인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야당이 정권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허약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를 약체로 분류한다면,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최약체라고 불러야 한다.

    국회 의석의 균형부터 크게 기울어져 있다. 한나라당 의석은 과반을 20석 이상 초과하는 172석이다. 더구나 18석의 자유선진당이 한나라당보다 성향상 더 오른쪽이어서 브레이크보다 액셀 역할을 해준다. 반면 민주당 83석과 민주노동당 5석을 합쳐 우파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은 88석에 불과하다.

    야당이 국회 의석이 부족해도 국민 성원이라도 뒷받침되면 나름대로 힘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반 토막도 안 되는 10%대에서 허덕이고 있다. 국민은 집권 세력에 대해선 실망감이라도 느끼지만, 민주당에 대해선 아예 관심조차 없다.

    야당이 이처럼 무기력해진 것은 수권(受權) 정당의 미래를 걸어볼 만한 인물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 신문사가 때 이르게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 중 몽당 지지율이라도 기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이라면 상대가 약할수록 좋은 것이 사실이다. 선거는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것이 중요한 상대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선거에서 이겨 집권하고 나면 역사(歷史)가 채점하는 절대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도 4년 이상 국정을 운영해야 할 집권 초기 정권에 '허약한 야당'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약체 정권이 최약체 야당을 마주한 것은 결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유능한 야당은 정권의 허물을 파고든다. 집권 세력은 야당이 공격해 오는 방향만 봐도 자기 몸 어느 곳에서 병이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장은 야당이 찔러 오는 것이 아프고 성가실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야당과 맞서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고 정권의 체질도 강화된다.

    반대로 야당이 야당 역할을 못할 경우, 정권은 자기 몸에 상처가 생겨도 아픈 줄 모르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정치가 약하다'는 것이 큰 약점인데, 민주당의 허약한 정치력 때문에 별 문제로 비치질 않는다. 또 민주당의 10%대 지지율과의 대비 효과 때문에 20%대 국정 지지율도 괜찮아 보이는 착시(錯視) 현상을 일으킨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허약한 야당과의 정치 게임을 즐기면서, 좀 더 야당을 무력화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권 스스로의 허물에 대한 치료의 타이밍을 놓치고 병을 치명적인 상황으로 키워 간다면 마지막 고통은 국민 몫으로 돌아온다.

    최약체 야당은 또 다른 형태로 파국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자신의 무력함을 감추기 위해 물리적인 투쟁에 나설 경우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파가 늘 마지막 수단으로 들고 나오는 것이 과격한 선명성 투쟁이다. 실제 민주당은 예산안 국회통과 과정에서 약세를 보였다는 초조감 속에 "법안 처리에서만큼은 본때를 보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가뜩이나 정치력이 약한 이명박 정부가 야당의 강경 투쟁에 부닥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약체 정권이 최약체 야당을 맞아 아직까지는 순항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더 뭔가 불길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아슬아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