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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역대 최대 표차인 530만표라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잃어버린 10년'을 청산하고, '국민성공시대'를 향해 순항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어느 정권보다 혹독한 취임 첫 해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을 걸고 출발한 이명박 정부는 '얼리버드'로 대표되는 의욕찬 출발을 보였다. 수년간 방치된 산업현장의 '전봇대'는 즉각 뽑아내고, 안이한 치안현장에는 직접 달려가 해결하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명박호(號)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아린지(orange)' 한마디에 휘청하더니 '강부자' '고소영' 등 인사파동이라는 암초에 걸리면서 거듭된 시련이 시작됐다.
10년만의 정권교체에 대한 우파 진영의 기대는 실로 대단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원칙을 훼손한 '대못'을 하루빨리 뽑아줄 것과 함께 과거 좌편향 정책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달라는 요구가 이 대통령을 재촉했다. 이 대통령은 또다른 이념갈등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인사파동을 갓 넘어선 이 대통령을 기다린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촛불시위'였다. 좌파 진영은 권력 상실을 보상받으려는 듯 거리로 쏟아졌고 단순한 쇠고기 문제가 아닌 이명박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에 대한 타격이 시도됐다. 이 대통령은 두번이나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앞에 고개숙여야 했으며,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적 개편이 이뤄졌다.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이어지자 국민은 지난해 이 대통령에게 전했던 과반에 가까운 지지를 보류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까스로 10%대에 턱걸이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당시 "'이명박 브랜드'에 대한 기대가 커 모든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결을 이 대통령에게 바라고 있고, 반대로 모든 책임도 이 대통령에게 지우게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대통령은 건국 60년 8.15를 반전의 계기로 삼았다. 법질서 바로 세우기와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녹색성장'이 제시된 이후 각종 민생개혁정책이 쏟아졌다. 이 대통령은 '소통'을 강조, 과감히 스킨십 폭을 넓혔으며 갈 곳 잃었던 지지층도 속속 복원되면서 지지율은 회복세에 올랐다.
9월 들어 닥친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이 대통령은 또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이 대통령 표현대로 "1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전세계적 금융위기"는 국내 시장을 극심한 혼돈에 빠뜨렸다. 이 대통령은 국내 실물경제에 주는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을 정부에 주문하면서 동시에 "위기를 기회로"라는 도전적 대처를 병행했다. 금융구조 개혁과 공기업 선진화 작업에는 속도를 더하는 계기로 삼았다.
내우외환 속에서도 외교적 성과만큼은 호평받았다. 이 대통령은 4월 미국과 일본 순방을 시작으로 중국, 러시아와 연이어 정상회담을 갖고 취임 첫 해 '4강 외교' 초석을 다졌다. 주변 4국과의 관계를 한단계 격상시키고 경제협력의 폭을 넓히는 '에너지 외교'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는 평가다. 특히 과거 정권에서 소홀했던 한미관계를 정상화, 전통적 동맹관계를 복원시켰다. 이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은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줬다.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도 확대됐다. G20 금융정상회의와 APEC 정상회의에 연이어 참석한 이 대통령은 선진국 중심의 국제 금융구조 재편과 신흥국 역할론을 강조해 공감을 끌어냈다. 다만 이 대통령의 전면적 대화 제의 등 노력에도 불구하고 냉랭해진 남북관계 개선은 난점으로 남아있다.
이 대통령과 여권은 집권 2년째인 2009년을 이명박 정부의 성패와 직결된 중요한 해라는 공통된 인식 하에 '경제살리기'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내년 초 청와대 구조개편과 개각을 통해 분위기 쇄신과 국정 장악에 본격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각종 민생 개혁법안은 국회 통과만 기다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새해 부처 업무보고와 경제운영 보고대회를 한달여 앞당겨 연말에 실시하고 경제회복을 위한 예산 조기 집행을 지시하는 등 이미 속도전에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