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에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쓴 <전교조 회의 석상의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전교조가 사면초가다. 조합원 수가 줄어들고 있는가 하면 촛불시위까지 활용해 대대적으로 지원했던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베일 속의 학교별 전교조 교사 수가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는가 하면, 학력성취도평가는 전교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었다. 또 보수단체에서 전교조를 반국가 이적단체로 고발하는 기자회견도 있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잘나갔던 전교조가 정권이 바뀌어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인가. 물론 투쟁을 통해 성장한 인동초(忍冬草)와 같은 전교조라면 이 정도의 시련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근의 여러 징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을 고사(枯死)시키기 위한 음모 정도로 치부하고 그에 맞서는 투쟁의지만 불태운다면, 나무만 볼 뿐 숲을 보지 못하는 우둔함과 다르지 않다.

    최근 한 주간지에는 전교조 서울지부 집행위원회의 회의 모습이 실렸다. 회의는 짧은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이뤄진 이른바 '민중의례'로 시작되었고, 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가 제창으로 이어지는 '국민의례'는 없었다고 한다. 필자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의 대표적 교원단체 중 하나이며 수많은 학생들의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전교조가 왜 국민의례를 회피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전교조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덫, 전교조가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본질적 이유가 숨어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우리 사회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로 표현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너무 국가주의적이라고 하여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이라는 내용으로 순화시켰다. 그렇다면 운동권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안으로 삼을 정도로 우리 애국가에 문제가 있는가. '라 마르세예즈'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국가는 "일어서라 조국의 젊은이들, 영광의 날은 왔다. …자아, 진군이다. 적들의 더러운 피를 밭에다 뿌리자"라는 혁명기의 호전적 표현 때문에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우리 국가에는 그런 전투적 느낌도 없다. 그럼에도 전교조는 자신들의 공식회의에서 왜 굳이 대안의례를 고집하는 것인가.

    전교조는 여기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만 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있어야 난다. 머리는 중심이다. 날개는 두 개일지 모르나 머리는 하나다. 전교조의 좌파 성향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국가에서는 교육정책과 관련해서도 좌파나 우파적 접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정체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더구나 스펀지와 같이 선생님의 말을 흡수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랴.

    마찬가지로 학력성취도 평가나 국제중학교 허용문제 등에서 이견을 가질 수는 있으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하여 이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국민의 자발적인 뜻에 의하여 이룩된 대한민국 정부를 미국에 종속된 식민지국가로 간주하고, 우리와 동맹을 맺고 안보와 번영의 병풍 노릇을 한 미국에 대하여 험한 말까지 마다하지 않는 근본주의 성향의 반미주의를 표방한다면 문제다.

    일찍이 외세반대와 저항적 민족주의를 근저에 깔고 있는 좌파민족주의는 대한민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매도하면서 건국의 정당성부터 부정하는 '부친살해(patricide)'의 독특한 담론을 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이룩했다고 주장하는 민주화 이외에 선배·부모세대가 이룩한 모든 자랑스러운 것들을 '성취'라기보다는 '흠결'로 치부해 왔다. 전교조가 그런 80년대의 좌파민족주의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야말로 "PD냐 NL이냐"만을 따지기보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다. 전교조는 청와대에 모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던 세력이 어떻게 국민의 버림을 받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