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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에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쓴 <'진보'라는 말, '좌파'라는 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본명도 있고 별명도 있다. 또 나이가 들면 아호(雅號)라는 것도 있다. 이름의 특징은 대체로 남이 붙여준다는 점에 있다. 내 이름은 내가 붙인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붙인 이름이다. 또 살다 보면 별명도 생긴다. 별명의 경우에는 내가 불러달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의 외모, 성격, 습관 등을 보면서 일방적으로 붙인다.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슴앓이 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지금 좌파·진보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왜 자신들을 '진보'로 부르지 않고 '좌파'로 부르냐는 푸념이다. 지난 주 KBS의 '미디어 포커스'도 바로 그런 불만을 터트렸다. 그런 불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보수보다 좌파·우파가 정확한 말이고 또 중립적인 말이다. 일찍이 프랑스 혁명의회에서 그 앉은 좌석의 위치에 따라 불린 것이 좌파와 우파의 기원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좌·우익'이란 용어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짐이 있다.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모습 때문이다. 그러나 6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좌파의 어두운 모습은 많이 벗겨졌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좌파는 국민들의 선택에 의하여 집권했을 정도로 정당성도 획득했다. 이제 한국에서 좌·우파란 말은 "새도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널리 회자될 정도로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좌파는 왜 자신들이 '좌파'로 불리는 데 콤플렉스를 갖고 한사코 '진보'로 불러주기를 원할까? 우리의 언어관행을 보면 비하적인 용어에서 품위있는 용어로 바뀐 사례가 꽤 많다. '식모'는 '가정부'로, '청소부'는 '환경미화원'으로 바뀌었다. 이런 현상을 미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좌파를 '진보'로 부르는 것도 '정치적 올바름'의 한 표현이라고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진보와 보수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구소련이나 동구에서는 공산주의를 지키려는 세력이 보수, 공산주의를 바꾸려는 세력이 진보가 되었다. 이처럼 좌파도 보수적일 수 있고 우파도 진보적일 수 있기에 한국의 좌파를 진보로 부르는 것은 부정확하다. 또 진보는 본명보다는 별명과 같은 것이다. 진보는 보수에 비해 좋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아닌가. 그 좋은 말을 과거회귀형 좌파가 독점할 수는 없다. 진보라고 불리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미래형 내비게이션'을 달고 운전해야 한다.
정명(正名)사상이란 게 있다. '…다워야 한다'는 것이 정명사상의 핵심이다. 아버지가 아버지다울 때 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자식이 자식다울 때 자식이 된다. 자식이 '웬수'처럼 행동하는데 어떻게 자식이라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좌파가 진보라는 말에 어울릴 만큼 진보답게 행동했는가. 좌파·진보란 말에 거품이 끼어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에 답변하려면 북한 인권에 대한 자신의 입장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또 대선과 총선에 참패했으면서도 반성문 하나 쓰지 않고 불법시위를 광장민주주의라고 하면서 투표에서 잃은 것을 길거리에서 줍겠다고 한다면 좌파 중에도 극좌의 행태인데, 어떻게 진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권력의 특혜란 특혜는 다 누리면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기초가 된 5·10선거를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다고 주장하니, 어찌 된 일인가. 차라리 그런 정부 하에서 대통령을 하지 않았다면 좌파의 절개라도 보존했을 터인데…. 자신의 행동은 고치지 않고 이름만 고치려고 하는 것은 작명가를 찾아가 이름만 고쳐 출세해보겠다는 필부의 속물적 근성에 다름 아니다. '좌파'로 불리는 현실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행태를 고치는 일부터 서두르는 것이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