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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종호 논설위원이 쓴 <'소가 짖겠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국 속담에 소보다 많이 등장하는 가축은 없을 것이다. ‘소 닭 보듯 한다’ ‘쇠귀에 경 읽기’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먹어라’ ‘소 뒷걸음 치다 쥐잡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 궁둥이에다 꼴을 던진다’ 등이다. 어느 속담인들 현실이나 이치 등에 대한 비유가 항상 적실하지 않을까만, 하도 어이없는 일이라 소까지 비웃겠다는 의미로 쓰이는 ‘소가 짖겠다’만큼 현재의 한국 사회 그 한 단면을 적확하게 풍자하는 속담이 달리 더 있을까 싶다.
소가 짖고도 남을 만한 일이 공동선(善)이나 사회 정의의 탈을 쓴 채 도처에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과 질서, 양식과 상식을 무시하고 흔드는 수준을 넘어 콩을 팥이라고 우기는 식의 궤변까지 서슴지 않으면서도 정당성을 강변하는 행태, 이성이 마비되지 않았다면 보일 수 없을 만큼 불합리하고 야만적인 언행 등이 집단적·조직적으로 확산돼 사회 전체를 혼란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노총도 비판한 민주노총의 ‘총파업 만능주의’만 해도 그렇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노무현 정부 때보다) 감옥에 열 배 이상 가더라도 투쟁하겠다고 미리 투쟁 계획을 설정해 놓고 시작했다”면서 대화를 해보기도 전에 정권을 투쟁의 대상으로 정해 놓은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사실상 무관한 파업 자체를 위한 파업, 그것도 노동자 다수가 반대하는 정치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명분의 옳고 그름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 맹목적 아집에 가깝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분명하게 부결로 나타난 파업 투표 결과를 가결로 둔갑시키기까지 하니 소가 짖을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7월을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 투쟁의 달’로 정한 민주노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 인간 광우병 감염 우려 = 노동자 권익 침해’ 식으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행태 역시 상식 이하이긴 마찬가지다. 쇠고기 수입과 노동 환경이 무슨 상관이 있어 파업을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에 직면하자 민주노총은 “노동자가 광우병에 걸리게 되면 건강을 잃어 아예 노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바, 건강은 노동자가 노동할 수 있는 근본 조건이어서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총파업은 폭등하는 기름값과 물가를 안정시켜 민생안정을 도모하도록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확산돼도, 뇌염 모기가 기승을 부려도 노동자들이 건강을 잃을 우려가 있어 총파업을 해야 한다는 식과 무엇이 다른가. 민생안정 도모가 파업의 이유라니, 고등어·꽁치 등 국민이 즐겨먹는 생선값이 올라도, 전기료와 수돗물값 등의 인상으로 가계 사정이 어려워도 파업이 당연하다는 것인가.
소가 짖을 언행의 빈발은 빗나간 노동계 일각에만 해당하는 현상이 아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현저히 훼손하며 편파 방송을 일삼게 한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인사를 감싸기 위해 촛불집회까지 끌어들여 되레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는 일부 세력의 이상한 행태도 그 중에 하나다. 초등학생들에게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글이 새겨진 배지를 나눠준 뒤 ‘대통령님, 학교 다시 다니세요, 민주주의도 배우지 못했나요’ 등의 문구로 대통령을 조롱하는 신문 광고를 내자며 그 학부모들로부터 광고비를 거뒀다가 말썽이 일자 되돌려준 전교조 소속 교사의 행태도 어이없기 그지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정부 역시 소가 짖을 만한 일을 반복, 급기야 이 대통령이 취임 4개월도 안되는 시점에 대국민 공개 사과를 두 번씩이나 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이 대통령이 19일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6월10일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면서 국민을 편안히 모시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고 한 만큼 국정 운영은 물론 사회 각 분야가 이제부터라도 독선과 아집, 궤변과 억지에서 벗어나 ‘소가 짖겠다’는 속담이 더 이상 적실하지 않게 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