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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일 사설 '인터넷 포털은 법 초월한 해방구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촛불집회로 재미를 본 대표적인 기업이다. 홈페이지를 보는 페이지뷰는 5월 마지막 주 10억 건을 넘어 1위를 차지했다. 경쟁 사이트의 주가가 곤두박질할 동안 다음의 시가총액은 50일간 1100억원 불어났다. 그렇게 잘나가는 다음이 일부 네티즌의 중앙·조선·동아 광고 불매운동이 실정법을 위반했는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는 소식이다.
다음의 대표이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포털은 권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나친 겸손이다. 다음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중·조·동이나 지상파 방송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수단이 편집 기능이다. 요즘 오락방송 출연자조차 “이 장면은 편집해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기사를 취사선택하고 비중을 결정하는 편집권은 그만큼 막강하다. 그런데도 기존 미디어와 달리 다음은 엄격한 언론 윤리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다음 대표이사는 “인터넷에서 마녀사냥이나 인신공격이 횡행하고 언어폭력이 난무한다면 소중한 공간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한 달간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나 신상정보가 노출돼 사이버 폭력을 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유력 신문에 광고를 낸 기업 담당자의 전화번호까지 공개해 “광고 빼, XX야”라는 테러 전화를 걸도록 유도한 글이 줄줄이 걸려 있는 사이트가 어디였는가.
포털사이트는 대중에게 정보를 효율적으로, 또 빠르게 전할 수 있다. 이는 거꾸로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정보가 그만큼 빠르게 유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고라에 오른 ‘여대생이 죽었습니다’라는 글이나 소화기를 휘두르는 전투경찰 프락치 사진 등이 얼마나 촛불 민심을 선동했는가. 결국 모두 허위로 판명났다. ID를 바꿔가며 추천수를 올린 숱한 낚시글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모두 엉터리고 제목만 ‘명박 퇴진’ ‘축산연구소 연구원입니다’를 단 글에 네티즌이 얼마나 열광했는지 다음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신문에도 일반 시민의 글을 게재하는 오피니언면이 있다. 만약 이 면에 다음 직원들의 신상정보를 노출하거나 다음에 광고를 낸 기업에 전화 테러를 퍼붓도록 유도하는 독자투고를 게재한다고 하자. 엄청나게 피해를 본 다음은 어떻게 할까. 신문사가 “그 글은 독자의 책임이고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를 위한 것”이라고 우긴다면 다음은 가만히 있겠는가.
사이버 공간은 해방구가 아니다. 엄연히 우리 법률이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영토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범죄의 자유까지 의미하지 않는다. 인격살인이나 명예훼손, 테러가 난무한다면 사이버 공간에 돗자리를 깐 주인도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한다. 포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지만 이를 감시할 기준은 허술하다. 피해자가 포털사이트에 기사 삭제를 요청할 수 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처벌규정조차 없다. 인터넷 포털이라고 사회적 공기(公器)의 윤리를 면제받을 수 없다. 돈만 좇아 우리 사회를 파괴하는 흉기(凶器)가 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