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6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14일 "지금 정부 역량으로는 민생고통과 공기업 민영화 같은 공공부문 혁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벅차다. 우선 민생 고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정책을 쓰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서민들의 민생이 급하니 공기업 민영화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이런 판단에는 중무장한 채 촛불시위의 주력군으로 위세를 과시한 공기업 노조의 모습에 움찔한 이유도 작용한 듯하다. 정부가 가뜩이나 코너에 몰려있는 판에 힘에 벅찬 일을 또다시 불러올 수는 없다는 뜻일 게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공기업 민영화가 왜 절실히 필요한가를 정확히 알리는 일조차 손을 놓아버려서는 정권의 혼마저 놓아버리는 것이다.

    어느 공기업은 28억원 흑자를 내고는 성과급으로 37억원을 나눠 갖고, 또 다른 공기업은 판매촉진비 예산을 봉급처럼 모든 직원이 똑같이 나눠 갖는 등 민간기업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태연히 벌어진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수도 없이 확인된 사실이다. 공기업의 이런 경영부실 탓에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공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금, 곧 국민 세금이 180조원 넘게 들어갔다.

    이렇게 국민 세금으로 구멍을 메우는 302개 공기업·공공기관의 작년 1인당 평균 연봉이 5340만원이다.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 임금보다 66%나 더 많다. 삼성전자보다도 임금이 더 많은 공기업이 92개나 된다. 이런 '신이 내린 직장' 때문에 국민들은 신의 버림을 받은 듯 등이 휘어버린 것이다.

    공기업들은 기업 수익성을 보여주는 총자산이익률(당기순이익/자산 총액) 지표가 작년에 평균 2.3%로, 상장기업 평균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공기업 10곳 중 3곳이 만성적자 상태다. 민간기업 같으면 벌써 문을 닫았어야 할 것들이 땀에 전 국민 돈 덕분에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의 목적은 이런 공기업의 비효율과 낭비를 바로잡아 국민 부담을 줄이는 데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는 공기업부문의 경쟁력을 높이면 경제 전체의 효율과 생산성도 높아져 경제 전체의 활성화를 선도하게 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이 앞다퉈 민영화를 밀고 나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민영화의 시기와 방법, 대상에 대해서는 전략 판단이 필요하다. 국민이 실질적 이익을 볼 수 있고, 그래서 국민의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아, 이 국민 지지의 힘으로 공기업 노조의 저항을 버텨낼 수 있는 분야를 골라 먼저 시행하는 것이다. 일본은 우정성(郵政省) 민영화 준비에만 4~5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구체적 전략도 없이 전기·가스·상하수도·의료보험 분야까지 생각나는 대로 민영화 계획을 들먹이다가, 민영화 반대세력들은 '하루 수돗물 값이 14만원이 된다'는 식의 괴담을 만들어 반격하고, 촛불집회는 공기업 민영화 반대시위로 둔갑하는 역풍을 맞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이런 공세에 밀려 공기업 민영화 대의까지 포기해서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된다. 정부는 공기업 하나라도 제대로 민영화해 국민이 그 효과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하고 말겠다는 결의를 살려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