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대통령 가족부터 30개월 미국 소 먹어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 휴대폰 더 팔려면 우리도 미국 쇠고기를 사 줘야 한다. 정부나 언론이 미국 쇠고기 뼛조각 하나까지 위험하다고 시비해 가면서 우리 축산 농가 피해를 지연시켜 왔지만 언제까지나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문제는 축산 농가 피해가 아니라 광우병 사태로 번졌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이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했다. "이성적, 합리적 판단 못지않게 국민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1997년 이후에 태어난 미국 소 중에 광우병에 걸린 소가 한 마리도 없고, 미국 땅에서 인간 광우병 걸린 사람도 단 한 명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국민의 70~80%가 광우병 걸린 미국 소가 들어오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민의 생각은 정부가 제 국민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이것은 축산 농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국민의 적(敵)이 되는 사태다.

    국민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미국 쇠고기 안 먹을 것 아니냐"고 말한다. "미국 쇠고기가 싸고 맛있으면 너희들이나 먹어라"고 한다. 이것이 시중에서 들을 수 있는 국민의 소리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이 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장 먼저 대통령과 장관들이 미국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 살코기뿐 아니라 국민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내장탕, 뼈 국물로 만든 설렁탕과 곰탕도 함께 먹어야 한다. 국민은 특히 30개월 넘은 쇠고기를 걱정한다. 미국인이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훨씬 더 먹는다거나, 현재 120개월 이하인 미국 소 중 광우병 발병 사례가 하나도 없다고 백 번 말해도 소용없다. 대통령이 30개월 넘은 쇠고기만을 골라서 먹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대국민 소통 방법이다.

    1회용 시식 행사는 반감(反感)만 더 살 뿐이다. 앞으로 1년 이상, 매달 두세 차례 이상 먹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가능하면 가족들도 함께 먹어야 한다. 대통령은 손자 손녀들에게도 30개월 이상 된 미국 쇠고기를 먹여야 한다. 만약 대통령이 이렇게 하는 데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어떻게 국민에게는 먹으라고 할 수 있는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쇠고기 협상을 그렇게 급하게 타결짓고, 그나마 번역도 제대로 못한 정부가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다면 말도 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한우(韓牛)만 먹어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다른 나라 고기를 시범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지만 지금 그걸 따질 계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한 달에 두세 차례는 삼계탕과 오리 고기도 먹었으면 한다. 익혀 먹으면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통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으면 체중이 올라가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갈 테지만 그만큼 국민 신뢰지수도 올라갈 것이다.

    그 다음은 미국 쇠고기 먹고 싶은 사람은 먹게 해주고, 먹기 싫은 사람은 안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필자도 기왕이면 한우를 먹고 싶다. 광우병 때문이 아니라 축산 농가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등급 미국 쇠고기가 한우의 반 값도 안 된다니 그쪽으로 손길이 갈 것만 같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판매점들이 무서워서 미국 쇠고기를 팔 수가 없을 지경이다. 먹고 싶은 사람, 미국 쇠고기밖에는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의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먹기 싫은 사람은 안 먹을 수 있는 게 더 중요한 문제다.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식당이 원산지를 속이면 자기도 모르게 먹게 되고, 단체 급식에서 미국 쇠고기를 쓰면 어쩔 수 없이 먹게 된다. 원산지 단속은 무섭게 하고, 단체 급식은 먹겠다는 사람보다는 먹기 싫다는 사람 위주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는 얘기를 지어내 퍼뜨린 사람들, 거기에 편승한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영원히 미국 쇠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먹는다면 국민을 농락한 죄를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