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박두식 정치부 차장이 쓴 '야(野), 지난봄에 한 일을 잊었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작년 봄, 통합민주당은 여당이었다. 대선을 앞둔 이합집산 탓에 여러 정파로 나뉘어 당명도 열린우리당 등 몇 개를 썼지만 통칭해서 범(汎)여권으로 불렸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타결된 것은 작년 4월 2일,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다. 14개월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시한을 몇 번이나 넘기면서 어렵게 마무리됐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은 대(對)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먹고사는 문제"라며 "우리 경제의 미래와 중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의 변화까지 내다보는 큰 장사꾼의 안목을 갖고 협상에 임했다"라고 했다. 임기 동안 정치 문제에 손을 댈 때마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던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FTA 타결 직후 지지율이 크게 반등하기도 했다. 대통령다운 일을 했다는 평가 덕분이었다.

    당시 여권에서도 FTA 찬성이 우세했다. 정동영 전 대선후보는 '축산 농가 등 피해 계층에 대한 대책'을 전제로 찬성했고, 친노(親盧) 진영은 더 적극적이었다. 당내 좌파와 농촌 출신 의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한미 FTA는 시대적 흐름"이란 노 전 대통령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타결된 한미 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별개의 문제다. FTA 협정문에서 쇠고기를 다룬 부분은 수입 관세를 15년에 걸쳐 없앤다는 규정 정도다. 협정문 어디에도 쇠고기 수입 개방을 FTA의 전제 조건으로 한다는 대목은 없다. 이 두 문제를 공동 운명체처럼 묶어 버린 것은 미국 도축업자들의 압력을 받은 미국 의원들이었다.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은 협상 타결 직전인 3월 29일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국제수역기구(OIE)의 권고에 따라 수입 재개 절차를 밟아갈 것"이란 약속을 했다. 이 구두 약속을 믿고 부시 대통령은 합의문을 승인했고, 이후 한미 쇠고기 협상이 시작됐다.

    이 무렵 노 전 대통령은 '광우병 문제'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FTA하면 광우병 소 들어온다며 플래카드 내걸고 투쟁하고 있는데 정직하지 않다"며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인들이 정직하지 않은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뉴스 스크랩을 뒤져 1년이 지난 일들을 다시 찾아본 것은 이제는 야당이 된 민주당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금 노 전 대통령이 '정직하지 않은 투쟁'이라고 불렀던 싸움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이 졸속이라는 평가를 받고, 적잖은 국민들의 가슴에 광우병 불안을 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한미 FTA를 봉쇄해 버리는 구실이 되기에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쇠고기 수입 재개에 따른 안전성 문제는, 새 정부의 후속 조치로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게 됐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한미 협상 등을 통해 풀어갈 일이다. 민주당의 상당수 의원들도 이를 인정한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쇠고기 정국'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FTA 찬성론자인 손학규 대표조차 "상황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만약 쇠고기 덕분에 민주당 사정이 나아졌다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론조사를 보면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추락했지만, 민주당의 지지율은 6개월 전 대선 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정권을 내줬다고 국익에 대한 판단마저 바꿔버린 정당이란 오명(汚名)만 추가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