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가 쓴 '만주국 양변기의 가격'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70세 이상 연세 드신 분이라면 아마 ‘지나(支那·중국)의 밤’이라는 일본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이 노래와 함께 리코란(李香蘭)이라는 여배우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도 있겠다. ‘지나의 밤’과 리코란은 일제가 세운 꼭두각시 나라 만주국(1932~45)과 일본,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서 무척 사랑받던 유행가, 그리고 영화 스타다.

    만주국은 일본 관동군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듬해인 1932년 3월 1일 공식 출범했다. 88년도 아카데미상을 휩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 푸이(溥儀)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면서 만주국 황제도 지냈다. 만주국은 오족협화(五族協和)를 건국이념으로 내걸었다. 일본·중국·조선·몽골·러시아인이 사이좋게 지내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나 총칼과 거짓에 기반해 세운 국가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아니었다. 만주국은 일본의 신도(神道)를 국교로 삼았고 일본 황실의 조상이라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공식적으로 모셨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식량배급에 차별을 두었다. 일본인에게는 흰쌀, 조선인은 흰쌀 반 수수 반, 중국인에게는 수수만 지급됐다.

    만주국의 기반은 식민지 조선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의 폭력이었다. 일본이 패한 45년 8월에 만주국이 무너지고 조선이 해방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현재 중국에서 만주국은 존재했던 ‘나라’가 아니다. 만주국과 관련된 것에는 거짓 ‘위(僞)’자를 붙인다. 만주국이 아니라 ‘위만주국’ 또는 ‘위만’이고 푸이는 황제가 아니라 ‘위황제’다.

    기이한 것은 만주국, 특히 수도였던 신징(新京)특별시가 당시 손꼽히는 첨단도시였다는 사실이다. 신징은 오늘날의 창춘(長春)이다. 신징 시가지와 상하수도 시스템은 아시아 제일이었고 놀랍게도 수세식 화장실까지 보급돼 있었다(조선·중국에 그런 시설이 없던 것은 물론이고 일본 도시에도 60년대에 이르러 수세식 화장실이 일반화됐다). 만주국에 정통한 한석정(동아대·역사사회학) 교수에 따르면 만주국은 조선·일본·중국의 수백만 인구와 지식인들을 빨아들이는 ‘동양의 엘도라도’였다. 문예작품에 ‘만주 낭만’이라는 장르가 생겼고 ‘지나의 밤’과 리코란도 그런 흐름을 타고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한편으로 만주국은 저항자를 잔인하게 처단했고 중일전쟁의 후방기지로서 대량의 인적·물적 동원을 자행했다. 악명 높은 생체실험도 만주국에서 빚어졌다. 한 교수는 이런 만주국이 “폭력과 복지를 겸비한 근대성의 두 얼굴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교과서 포럼’에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펴낸 것을 계기로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 논쟁이 재연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금은 사라진 만주국을 머리에 떠올렸다. 만주국의 두 얼굴은 식민지 조선도 마찬가지다. 만주 지역은 50년대 중국 경제에서 공장 생산의 33%, 근대적 수송에 의한 부가가치의 43%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중국판 ‘식민지 근대’의 여파라 할 수 있다.

    나는 우리의 일제 식민지 시절이 근대화와 전혀 관계없다거나 반대로 착실한 근대화 시기였다고 주장하는 양극단을 배격한다. 다만 며칠 전 어느 TV 프로그램 제목처럼 ‘뉴라이트 교과서, 한국판 후소샤?’ 식으로 자극적인 언어폭력을 일삼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대안교과서 출간을 계기로 이왕이면 역사학자들이 나서서 대대적인 토론을 벌였으면 좋겠다. 만주국 양변기를 예로 들자면 우리 학계에는 “양변기 자체가 없었다” “한국인을 착취하는 수단이었다” “한국인은 제조법을 전수받지 못했다”는 주장부터 “양변기 덕분에 분가 후 자동차·반도체 만드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값으로 치면 마이너스(-)부터 후한 가격까지 천차만별이다(개인적으로는 대안교과서가 매긴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정·반·합이라 했던가. 학계가 지혜를 모아 몇 년 뒤 ‘제3의 교과서’를 내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