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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일 사설 <정치와 정당의 자존심을 팽개친 '박근혜 마케팅'>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4·9 총선에 출마한 한나라당, 친박연대, 여 성향 무소속 후보들 사이에 박근혜 전 대표의 이름을 팔려는 경쟁이 노골화되고 있다. 어제 신문에 난 사진 한 장이 그런 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자기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다른 지역구의 한나라당 후보와 친박연대 후보가 그 앞에 어색한 표정을 하고 나란히 서 있었다. 얼핏 보면 박 전 대표의 선거운동원인 줄 착각할 법한 모습이다. 자기 지역구 선거운동을 제쳐 두고 박 전 대표 곁에 와서 신문 사진이나 TV 카메라에 찍히려고 한 것이다.
정당의 정체성(正體性)도 후보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모두 팽개쳐버린 것이다. 그게 자신의 정견이나 정책을 갖고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보다 표를 얻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정말로 한심한 선거이고 어쭙잖은 후보들이다. 나라의 머슴이 아니라 박 전 대표 사가(私家)의 머슴이나 했으면 딱 맞을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표를 찍어야 하는 유권자 처지가 안쓰럽다.
이들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수도권 출마자 5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박 전 대표에게 제발 지원 유세 좀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심지어 박 전 대표의 반발을 산 대표적 인물인 이방호 사무총장까지 라디오에 나와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부탁했다. 이러려면 무엇 하러 박 전 대표를 자극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친박연대 측이 놀라서 박 전 대표에게 아무 곳에도 지원 유세를 하지 말아 달라고 말리고 나섰다.
지금 여권을 둘러싼 선거 상황은 희한하다는 말밖에 할 게 없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그의 팬클럽인 박사모 회원들은 전국 여기저기서 한나라당 후보 떨어뜨리기 운동을 하고 있다. 수도권에는 친박연대가 있고, 영남권에는 또 친박 무소속 연대가 있어서 보통 유권자들은 뭐가 뭔지 헷갈린다. 이들은 말로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다"고 하지만, 실은 박 전 대표 이름을 팔아서 제 가슴에 국회의원 배지 다는 데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래도 박 전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어제는 당내 자기편 후보 11명에게만 영상 지원 메시지를 보냈다. 집권당 주변이 이렇게 무원칙하고 어지럽게 된 것이나, 전국의 집권당 후보들이 어느 특정 한 사람의 말 한마디, 눈짓 하나라도 얻어보려 구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 모두가 그 높던 지지율을 두 달 만에 까먹은 자업자득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