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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국민한테 '졌다' 해라, 그래야 성공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작년 12월 19일에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가 동시에 치러졌더라면 대한민국 정치는 오늘 어떤 모습일까.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전국 245개 선거구 가운데 210곳에서 승리했다. 그것도 170개 선거구에선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20%포인트 이상 크게 앞질렀다. 통합민주당은 호남 울타리 안 31개 선거구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후보는 충청권 4개 선거구에 한발만 간신히 올려 놓았다. 이런 계산으로 하면 한나라당 의석은 개헌선인 200석을 훌쩍 뛰어넘어 250석 부근에 육박했을 것이다. 하마터면 한나라당 일당독재가 출현할 뻔했다. 100일 전 민심이 이랬다.
국회의원선거가 열이틀 앞으로 다가온 지금은 어떤가. 요즘 시중 화제는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 의석(150석)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다.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이명박 당선인이 나랏일을 잘해낼 거라는 사람이 86%에 달했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사람은 50%에서 60%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100일 만에 30% 가까이가 빠졌다. 이명박 정부가 일할 수 있게 우선은 원내 안정의석으로 밀어줘야 한다는 사람이 42%, 제멋대로 하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한다는 사람이 40%다.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3명 중 1명이 총선에선 다른 당 후보를 찍겠다며 등을 돌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물론 한나라당이 단단히 믿는 언덕이 있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 지역과 지지 계층의 충성심이 여전히 탄탄하고, 탄핵 역풍 덕분에 덩달아 당선된 ‘덩달이 의원’들이 주력군(主力軍)인 민주당 후보 면면을 볼 때 과반의석은 너끈히 확보하고도 남는다는 계산이다. 일부 여론 조사도 이런 낙관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긴 해도 함박눈은 쉬이 녹는다더니, 민심이 무섭긴 무섭다. 한나라당 일당독재 출현을 걱정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위풍당당했던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느냐 못하느냐가 시중의 화제가 됐으니 말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그 사이 무슨 불장난을 했기에 530만표란 엄청난 대선 표차가 이렇게 눈 녹듯 녹아 버렸을까. 인수위 핑계는 괜한 소리다. 정권인수위가 죽을 쑤기는 김대중 정권 때나 노무현 정권 때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무엇이 대통령 선거의 여세를 몰아 '대선 같은 총선'으로 치를 수도 있었을 선거를 구두끈도 미처 매지 못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만들어 버린 걸일까. 정부 인사(人事)와 공천파행과 지도부의 언동(言動)이란 3박자 탈선 때문이다. 정부 인사나 총선 공천은 선거와 당내 경선으로 뿔뿔이 흩어진 마음들을 다시 한데 모으는 국민 통합과 당내 화합의 접착제 구실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도 당도 다시 숨을 쉰다.
아무리 잘난 정치인도 자기 패거리의 지지만으론 권력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주역도 계층, 지역, 종교, 학교, 핏줄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닮은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과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 한때나마 그들 쪽에 마음을 두고 그들에게 표를 줬기에 집권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도 한가지다. 그런데도 권력이 ‘곱고 낯익은 내 편’에게만 떡을 돌리고 누구는 ‘미운 놈’이라며, 누구는 ‘낯선 놈’이라고 얼굴을 돌리게 되면 권력 등뒤엔 자기 패거리만 남게 된다. 노사모 하나 달랑 거느린채 고단하고 고적했던 노무현 정권의 말년이 그랬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일이 잘못됐다고 계속 투덜대는데도 누구 하나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고, 누구 하나 “잘못했습니다. 제 책임입니다”라고 나서는 사람도 없고, 누구 하나 그걸 바로잡으려고 몸을 던지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당과 정부 그리고 위와 아래 할 것 없이 서로가 상대방 가슴에 삿대질만 해왔다. 국민을 이기고 또 이기고 거듭 이기다 종당엔 권력의 대들보가 부러져 내려앉아 버렸던 노무현 정권을 그렇게 흉보더니 그걸 닮아갈 모양이다. 국민한테 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정권에겐 총선 너머에도 위기가 줄을 서 기다릴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졌다 하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성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