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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6일 사설 '실력자 사유물 돼버린 한나라당·민주당 비례대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각 당이 지역구 공천을 마무리하고 비례대표 후보들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50명, 통합민주당은 40명, 자유선진당과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각각 10명씩을 국민 앞에 내놓았다. 유권자들은 4월 9일 투표장에 가 자기 지역에서 출마한 지역구 후보에게 한 표, 각 당이 내놓은 비례대표 후보들의 이름과 얼굴과 경력을 보고 정당에 한 표를 각각 던지게 된다.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려고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느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 민주당의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는 사이좋게 자기를 밀어준 사람,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챙겼다. 손 대표는 자신의 지지모임 공동대표와 과거 자기의 중소기업 특보를 했던 사람뿐 아니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 가족까지 당선권 순번 안에 밀어넣었다. 박 대표는 당선 가능권인 20번 이내에 과거 민주당의 의원, 당직자 출신을 5명이나 집어넣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면서 현직 의원 숫자로 치면 당내 최대 세력이랄 수도 있는 정동영 전 대통령 후보 측은 완전히 외면해버렸다. 노름판의 '현장주의'가 정치판에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오죽했으면 그 쪽에서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쯤되면 비례대표제는 정당대표의 사유물로 타락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빈민운동가, 한센병을 극복한 사회운동가, 장애인 등을 5번 이내에 배치함으로써 소외계층 배려의 구색을 맞추고선 그 밖의 당선권 안 자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차지가 됐다. 선대위 공동위원장, 당선자 비서실 팀장 등 4명에게 사실상 금배지를 줬다.
비례대표제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의회에 반영하고, 1등뿐 아니라 2등 이하의 후보가 얻은 표도 사장(死藏)시켜선 안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우리처럼 지역에 따라 표가 특정 정당으로 우르르 쏠리는 나라에선 이를 보완하는 처방전이 될만한 제도이다. 15~17대 총선을 합쳐 영남권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당 등의 4.4배, 호남에서 민주당 등은 한나라당의 19배를 얻었다. 그런데도 이번 비례대표 공천에선 이런 극심한 편중 현상을 보완하려는 의지를 찾기 힘들다. 민주당의 경우 당선 기대선(線)인 20번 안에 영남(5명)보다 호남(7명)이 더 많고, 한나라당 역시 당선 가능권인 27번 안엔 영남(10명)이 호남(5명)보다 2배나 된다.
비례대표제가 이처럼 제 식구 밥줄 챙겨주는 수단으로 계속 오용(誤用)될 경우 머지않아 비례대표 폐지론이 고개를 들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