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5일 사설 '사분오열 한나라당, 여(與) 압승 여론조사만 믿는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가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이 갈가리 찢기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공천 결과에 대해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며 대통령의 사람들에 대한 투쟁을 선포했다. 당에서 박 전 대표 사람들을 합심해서 몰아내 박 전 대표의 투쟁 과녁이 된 대통령 사람들은 이젠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하는 중이다. 처음엔 박 전 대표 쪽 사람들을 밀어낸 빈자리에 누구 쪽 사람을 더 많이 심을 것인가를 놓고 다투더니 요즘엔 사나워진 민심의 십자가를 누구에게 짊어지게 할 것인가를 놓고 서로 상대의 등을 떠밀고 있다. 누구는 실세(實勢) 중의 실세라는 이재오 의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보고 물러나라고 한다. 둘 다 함께 물러나라는 이도 있고, 여론은 수시로 변하는데 여론 눈치 볼 게 아니라 둘 다 출마하라고 배짱 소신을 피력하는 사람도 있다.

    선거운동은 총선후보 등록을 받는 25일부터 사실상 시작된다. 열차는 떠나는데 여당은 승차인 명단조차 확정 짓지 못한 채 누구를 열차에서 끌어내릴지, 그럼 그 자리에 누구를 대신 태울지를 놓고 우격다짐을 계속하고 있다. 과거 같았으면 신임 대통령의 권위와 정권의 힘이 하늘을 찌를 때인 집권 초의 여당이 이 모양이다. 집권 한 달 만에 정권의 앞날을 걱정하는 말이 나오게도 됐다.

    한나라당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대통령의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이명박당'으로 만들려고 무리수를 둔 탓이다. 한나라당은 당헌에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하는 자는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 선거 1년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대권을 쥐려 하거나 대권을 쥔 자는 당권에 손대지 말라는 조항이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해 당의 공천권까지 틀어쥔 과거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없애야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고 해서 한나라당 스스로 만든 장치이다.

    한나라당 실세들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넣는 일이 더 절실하다면서 이 조항들을 깔아뭉개 버렸다. 달라진 시대와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를 너무 얕잡아 봤던 것이다.

    한나라당 실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영호남 지역구도에 무임승차(無賃乘車)해 선수(選數)를 쌓은 다선(多選)은 바꿔야 한다는 민심을 무기로 물갈이를 밀어붙였는데도 국민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아무리 지켜보아도 이들이 왜, 무엇을 위해 저렇게 용맹스럽게 칼을 휘두르는지 알 수 없었고, 그 과정도 공평무사하지 못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경선 때부터 국민을 제쳐둔 채 자기들만의 이해를 놓고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못마땅해했다. 탈(脫)여의도 정치를 주요 캐치프레이즈로까지 삼았다. 그랬기 때문에 대선 이전부터 이 대통령이 집권하면 기존 정치인들을 싹 바꾸려 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이번 한나라당의 공천 파동이 대통령의 이런 생각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의도 정치로부터 멀어지고 싶어하는 대통령의 심리를 눈치 챈 측근들이 이를 이용해 공천을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을 수 있다. 그 어느 쪽이 됐든 요즘의 한나라당 모습은 대통령의 탈(脫)여의도 정치 드라이브가 오히려 정치의 보복을 불러온 결과다.

    아무리 좋은 뜻에서 출발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 정치적 파급 효과를 내다보지 못한 채 입안된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새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선보인 몇 차례의 인사와 그로 인한 파동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현 정부 사람들은 과연 정치적 감각을 갖추고 있는가란 의문을 가져왔다. 인사를 한 번 할 때마다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오르기는커녕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5%, 10%씩 주저앉았는데도 아무도 이런 인연(因緣) 챙기기로 시종한 인사 패턴(pattern)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이렇게 임명된 장관들은 또다시 부처 내에서 인연 챙기기 인사를 되풀이했다. 결국 공무원들이 맨 먼저 정권의 인사에 냉소적(冷笑的)이 돼갔고, 이 흐름은 각계각층의 국민들에게 퍼져 나갔다.
    이 대통령의 전공은 경제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은 대통령이 올바른 정무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곁에서 '정치적 뇌(腦)'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대통령에게는 부족한 정치적 판단과 조언을 하고 있다는 말은 지금껏 들은 적이 없다. 대통령 주변에 '정치의 공백(空白)'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민심을 되돌리려면 지금이라도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시인하고 그걸 바로잡을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실세란 실세들은 모두 남한테 희생하라면서 자기들은 "지역에서 심판받겠다"고 버티는 중이다. 지금 같아선 당에서 이 실세 저 실세들이 다 물러나버리면 박근혜 전 대표 혼자 살아남아 있게 되는 약간 황당(荒唐)한 상황까지 벌어질 판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여전히 한나라당 압승으로 나온다는 총선 여론조사 결과를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면서 손을 놓고 있다. 총선이 청와대 여론조사 결과대로 나왔다는 말은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의 여론조사 수치와 한나라당이 4월 9일 받을 성적표가 같을지 다를지 함께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