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자 사설<한나라당 안에서 한나라당에 전쟁 선포한 박근혜 전 대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前)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이 정당정치를 후퇴시킨 무원칙한 결정이었다고 비판하고 당 소속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박씨는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이 만든 ‘친박(親朴)연대’나 ‘무소속 연대’ 후보에 대해서는 지원유세를 하지 않겠다면서도 “참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 “건투를 빈다”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보탰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자는 떨어뜨리고 반(反)한나라당 선언을 하고 당을 뛰쳐나갔던 사람들은 반드시 당선시켜 달라고 호소한 셈이다.

    박 전 대표의 회견 곳곳에선 한나라당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고 말겠다는 원한(怨恨)이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춘삼월(春三月)에도 서리가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한 셈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과 자신 측근들의 정치적 가치를 몰라줬던 한나라당에 반드시 매운맛을 보이겠다는 뜻인 듯하다.

    박 전 대표의 이날 대(對)한나라당 전쟁 선포에 앞서 ‘친박연대’의 홍사덕 전 의원은 한나라당 총선 지휘부인 강재섭 대표의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박 전 대표는 당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정당의 명칭에 붙여 선거에 공공연히 활용하는 자신의 측근들과 분명히 선을 긋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고무 격려하고 그들 편에 섰다. 박 전 대표의 행동만 봐서는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한나라당이 정책과 신념을 실현할 바탕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다른 당 의석을 늘려 자신과 자신들의 측근을 팽개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고 말겠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본심인 듯하다. 강 대표가 박 전 대표의 회견 이후 곧바로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박 전 대표측의 이 같은 본심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뭐래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책임은 공천을 계기로 한나라당을 이명박당으로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파벌적 개인 욕심을 챙긴 주류측과 이런 사태를 느긋하게 또는 멋모르고 즐겨온 이명박 대통령측의 정치적 무신경(無神經)과 무능(無能)에 있다. 그렇다고 당에 남아 있으면서 당 밖과 호응해 자기의 소속 정당을 무너뜨리겠다는 박 전 대표의 처신은 앞날을 내다본다는 정치인의 처신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박 전 대표가 자신의 한(恨)을 푸는 데 성공하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정책과 공약을 실천하지 못하는 정치적 불구(不具)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고, 박 전 대표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박 전 대표 자신의 정치적 몰락이 불가피할 것이다. 박 전 대표를 지지했거나 마음 한편으로 성원했던 사람들조차 당(黨) 아니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고른 박 전 대표의 선택을 혀를 차면서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