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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홍준호 논설위원이 쓴 '김장수와 송민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을 지낸 김장수씨를 비례대표 후보로 발표하자, 민주당은 노 정부의 마지막 외교통상장관을 지낸 송민순씨를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은 김씨에 대해선 자기들과도 접촉했던 사실을 털어놓으며 험한 소리를 쏟아냈다. 여야가 비례대표 영입 인물을 확정해 공표한 건 두 사람이 처음이고, 두 당이 특정인의 영입을 놓고 다투다 얼굴까지 붉힌 건 김씨 말고는 아직 없다.
두 당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두 사람을 대표적인 영입 인사로 삼아 이번 선거전의 앞줄에 내세우려는 모양이다. 물론 두 사람은 비례대표로 손색없는 인물들이다. 각각 자기 분야에서 외길을 걸어 정상까지 오른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특히 장관 시절 꼿꼿한 자세로 김정일과 악수해 인기를 얻은 김씨에 대해선 여야 모두 눈독을 들여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야가 두 사람을 선거의 앞줄에 내세우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맨 앞줄에 설 사람, 중간을 지킬 사람, 뒤에서 따를 사람이 따로 있는 법이다. 이번 총선은 노무현 이후 시대를 이끌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이다. 여당에는 이명박 시대를 뒷받침할 인물을, 야당에는 이명박 정부를 견제할 인물을 각각 국회에 내보낼 책무가 있다. 그런 선거에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 하더라도 노 정권의 마지막 장관들로 하여금 맨 앞줄에 서도록 하는 것은 결코 책임 있는 정당의 성의 있는 자세일 수 없다.
한나라당은 지역구 공천에서 현역의원 10명 중 4명을 잘랐다. 민주당에선 대통령 후보와 전직 대통령 아들, 측근들이 줄줄이 날아갔다. 군사정변을 제외하곤 역대 최고의 숙청이라고들 한다.
집권당과 제1야당이 소속 의원들을 향해 이렇게 심하게 칼을 휘두른 건 새 시대를 맞는 각오가 그만큼 비상하다는 뜻일 게다. 또한 그런 각오를 국회에서 실천에 옮길 새 인물들을 국민 앞에 많이 내세웠다는 선언일 것이다. 그렇다면 화제의 뉴스엔 당연히 새 시대 새 인물들이 올라야 한다. 여야는 비례대표 후보인 김장수 전 장관이나 송민순 전 장관을 놓고는 잠시 입씨름하고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신망 있고 경쟁력 있는 신진기예들의 이야기에 쏟아 부어야 한다.
과거엔 그랬다. 이쪽이 재야인사를 끌어들이면 저쪽도 재야로 맞불을 놓고 이 당이 CEO를 영입하면 다른 당도 CEO를 끌어들였다. 재벌 총수가 정치에 도전한 14대 총선 때 샐러리맨의 신화를 등에 업고 국회에 들어온 이 대통령도 화제였고, 지금 여당에서 칼자루를 쥔 이재오 의원은 15대 총선 때 민중당 출신으로 우파 정당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매번 총선 때마다 각 당의 공천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건 주로 신인 공천자들의 몫이었다. 이번엔 아니다. 이들 신인들 대신 뉴스를 가득 메우는 건 목이 날아간 의원들과 이들을 자른 실세(實勢)들의 무용담뿐이다. ‘물갈이 역대 최고’에 ‘화제 신인 역대 최저’이다.
일을 이렇게 만든 책임은 한나라당이 더 강하게 느껴야 한다. 대선 후 한나라당은 몰려든 사람으로 넘쳐났다.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공천 경쟁률은 모조리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이렇게 좋은 여건 아래서 그동안 어디 가서 어떤 인물들을 찾았기에 이런 말을 듣게 됐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여당 사람들은 “정권이 10년간 진보 쪽에 넘어가 있었던 탓인지 한나라당 쪽에서 쓸만한 사람이 참 없더라”고 말한다. 무책임한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그간 한나라당의 실세들이 제 식구를 심는 데 정신을 판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새 시대 새 사람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한 필자가 과문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