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에 이 신문 윤영신 경제부 차장대우가 쓴 "술 따르던 사람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6년 4월 이명박 서울시장 때 일이다.

    서울시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와 공동으로 'FT아시안 파이낸셜 센터 서밋'이란 국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어떻게 하면 서울을 금융허브 도시로 키우느냐가 주제였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글로벌 금융회사 임원들이 초청됐고, 앨런 그리스펀 전 FRB 의장이 화상(畵像)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이명박 시장은 한국측 주요 인사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을 초대했다. 그러나 한 부총리는 "다른 스케줄이 있다"며 참석을 끝내 거부했고, 윤 위원장만 자리에 나타났다.

    명색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금융도시로 만들겠다'는 국제세미나인데, 아무리 야당(당시 한나라당) 출신 서울시장이 주최하는 행사라지만 경제부총리가 빠진 것에 대해 이 시장은 꽤 섭섭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후 이 시장은 금융관료와 금융정책을 비판할 때마다 이 일을 자주 거론했다고 한다. 이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이 '사건'은 경제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됐다.

    "이 대통령이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더라" "재경부는 앞으로 '금융정책'이란 용어조차 쓰지 말라고 이 대통령이 지시했다더라"….

    그리고 최근 이 대통령은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통폐합시킨 금융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에 민간 금융인을 임명했다. 금융정책의 칼자루를 관료에게 빼앗아 민간인에게 맡긴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금융관료들도 간단치 않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모피아'라 불리는 금융관료 집단과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결국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그들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옆에서 술 따르던 사람이 감히…."

    아직도 일부 금융관료들의 머릿속에서 민간 금융인들은 '술 접대하는 사람'쯤으로 여겨진다. 인허가 규제와 감독·징계권을 갖고서 금융회사들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는 금융관료들 앞에서 민간 금융인들은 완벽한 '을(乙)'이다. 어쩌다 민간 금융인 스타가 탄생해 정부 권위에 도전하는 행동을 보이면 여지없이 '관(官)의 응징'이 날아온다. 그럴 때 금융관료들이 쓰는 말이 "감히, 술 따르던 자가?"였다.

    얼마 전에 만난 한 금융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연히 공무원들 모임에 낀 적이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특정 민간금융인을) '술 따르던 사람'이라며 공격해댔다. 내가 자리에 있는데도 계속 그런 말을 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

    우리금융 부회장 출신인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금융관료들에겐 '술 따르던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 '술 따르던 사람'이 이제 상전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에게 술잔을 받던 금융관료들이 지금은 결재서류를 들고 그의 집무실 앞에서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금융관료들 중에는 전 위원장과 함께 금융개혁을 해보겠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전 위원장을 '술 따르는 사람'으로 남겨둔 관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전 위원장을 포위한 관료들 가운데에 가면을 쓴 '개혁의 적(敵)'들이 더 많아질지 모른다.

    전 위위원장이 아무리 "섬기는 금융정책"을 외쳐도, 시장으로부터 '섬김'을 받아온 이들의 마인드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금융위원회의 '위로부터 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고, 내부 관료 개혁부터 하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광우 위원장의 성패는 훗날 이명박표 정부개혁을 평가하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