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몸 쓰지 말고 머리 씁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 이어 새 정부도 휴일 없는 '노 홀리데이'로 가고 있다. 청와대가 일요일에 수석 비서관 회의를 하니 외교부가 토요일에 정기 간부회의를 하기로 했다. 다른 부처들도 하나 둘씩 따라갈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종류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은 없다. 휴일만 없어지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1시간 30분 당겨 오전 8시에 소집한 것을 신호로 각 부처의 출근 시간이 모두 당겨질 모양이다. 선진국처럼 일찍 나왔다고 일찍 퇴근하다가는 당장 찍힌다. 결국 휴일도 없고 평일에도 부처에 앉아 있는 시간이 앞뒤로 다 늘어나게 될 것이다.

    세금 내는 국민들 입장에선 공무원들이 휴일에도 출근한다면 나쁠 게 없을 듯하다. 그러나 한 꺼풀 들어가면 "아직도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이 의욕만 넘치는 공부계획표를 만들면 그 계획표는 언젠가 흐지부지되는 법이다. 무슨 일 생기면 직원들 휴가부터 막고, 출근 시간 당기고 퇴근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이다. 그것이 성과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직장인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무엇보다 '노 홀리데이'와 '새벽 별 보기'와 같은 낡은 레퍼토리는 이명박 시대가 내걸었고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선진, 창조, 실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부터 지금까지 노벨상(문학상·평화상 제외) 수상자의 3분의 1이 유태인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의 5분의 1, 미국 100대 부호의 5분의 1이 유태인이다. 이 기적 같은 유태인의 힘은 100% 교육에서 나온다. 그 유태인 어머니들이 자식들 가르치는 말의 핵심은 "몸을 쓰지 말고 머리를 쓰라"는 것이다. 공사장에서 잡역부를 해도 몸을 쓰는 사람과 머리를 쓰는 사람의 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몰입'이란 책을 쓴 서울대 황농문 교수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Work hard) 남보다 두 배 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열심히 생각하면(Think hard) 남보다 10배, 100배, 1000배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21세기 지식경제 시대에 국가의 생존 법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새 정부의 지식경제부 장관은 아침 7시에 나와서 간부회의를 1시간 빨리 여는 것부터 시작했다. 앞장 서 'Think hard' 해야 할 부처의 장관이 'Work hard'로 자신의 등장을 알린 셈이다.

    선진, 창조, 실용에서 세계 최고인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이다. 빌 게이츠 회장은 자신을 포함해 회사 모든 임직원이 휴가 외에 1년에 두 번 쉬면서 생각만 하게 했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다. 기업의 사활이 직원들의 근무 시간 길이가 아니라 직원들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느냐에 달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IBM은 경영 철학 자체가 'Work hard'가 아니라 'Think smart(스마트하게 생각하라)'이다.

    사람이 생각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연간 140일 휴가, 5년마다 전 직원 해외여행을 실시하는 일본 미라이 공업사가 망하기는커녕 업계 1등을 한다. 직원들 머리를 쓰게 하는 회사가 몸을 쓰라고 닦달하는 회사들을 이기는 것이다. 이 원리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선진, 창조, 실용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누가 마이크로소프트나 IBM에 가서 "일을 더 잘하려면 휴일도 없이 새벽 별, 밤 별 보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지 그 광경을 상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야근, 특근을 밥 먹듯 하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노동생산성이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된다. 몸으로 때우는 게 정부의 경쟁력이라면 대한민국은 세계 1등일 것이다. 대통령실장이 대통령에게 "4시간만 자려니 힘들다"고 하소연할 정도인데 따라올 나라가 없다. 창조적 실용정부가 공무원들에게 "몸 쓰지 말고 머리를 쓰라"고 일침을 가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사람들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