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에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인 허영 전 연세대 교수가 쓴 '양심 속이고 장관을 맡은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선진화 원년’을 선포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선진적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강한 포부를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 10위권에 속한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민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외국에서도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후진적인 정치 행태, 사회 갈등의 조정 능력 부족, 문화적인 자긍심 결여 등 선진사회의 필요조건을 갖추지 못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국민의 자기 관리 소홀과 기초질서 무시 태도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선진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자기 관리에 허술하고 모든 생활영역에서 기본을 지키지 않아 선진사회에 필요한 기초질서가 확립되지 못하다 보니 후진국의 멍에를 벗기 어렵다.

    타협과 절충을 모르고 언제나 완승만을 노리는 무한투쟁의 정치, 투명성을 외면하는 기업의 경영 실태, 그래서 세무조사를 두려워하는 기업,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도로교통의 무법천지,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저작물의 범람, 남의 아이디어를 모방하기에 바쁜 연예문화,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 시위문화, 이웃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생활문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후진적인 모습을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흠 있으면 사양의 미덕 보여야

    이 모든 후진적 현상의 공통분모는 자기 관리의 부족이다.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엄격한 생활 태도가 우리나라 후진적 사회현상의 뿌리이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 태도부터 선진화되어야 한다.

    스스로에게는 엄격하면서 남에게는 관대한 생활 태도로 180도 바뀌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엄격한 자기 관리는 선진화의 필수조건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일부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경력 시비, 부동산 투기 의혹, 표절 논란만 해도 자기 관리 부족에서 비롯된 일이다. 엄격한 자기 관리를 했더라면 모두가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게 된 것이 투기 목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누구보다 자기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발표한 연구논문의 표절 여부도 본인의 양심이 말해 준다.

    기본에 충실할 때 투기 목적의 부동산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학자의 기본적인 양심으로는 표절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강화되는 대학사회의 업적주의 때문에 같은 논문의 중복 기고나 표절 유혹에 빠질 수는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시적으로 부동산 투기 유혹이나 표절 의혹에 빠져 자기 관리에 부실했던 사람은 대통령 당선인의 국무위원 제의에 스스로 사양의 미덕을 보였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새 정부의 산뜻한 출발에 걸림돌이 되지는 말았어야 한다.

    사적인 생활 영역에서 자기 관리에 부실했던 사람이 세속적인 출세욕에 빠져 높은 공직을 맡는 것은 우리나라의 선진화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런 사람이 공직자가 되어 공직수행에서도 남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자세로 업무 처리를 하다 보면 과거처럼 부정과 부패의 후진적인 공직문화를 탈피할 수 없다.

    자기 관리가 선진화 필수조건

    누구나 출세욕의 노예가 되기 쉽지만 그릇된 출세주의는 후진성의 징후이다. 감투보다 자신의 양심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선진적인 생활 태도이다. 자기 관리에 충실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높은 공직을 맡는 일은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높은 자리가 탐나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공직을 맡아 본들 결코 가문의 영광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에겐 엄격하지만,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세속적인 출세보다는 양심을 속이지 않는 일이 가장 소중한 삶의 가치라는 인식이 국민 모두에게 확산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화 원년을 선포한 이명박 대통령부터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선진적인 생활 태도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