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주용중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첫 대통령실장 귀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청와대 비서실장보다 그럴듯한 새 직함의 주인이 누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점찍어 두었겠지만 발표를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대통령실장은 비서실·정책실·안보실 등 3실(室)이 '대통령실' 단일 체제로 개편되는 새 청와대를 아우르는 자리입니다. 부총리제도가 없어지고 총리도 자원 외교 등 독자 업무에 주력하게 되면 대통령과 내각을 잇는 역할도 책임지게 됩니다. 그래서 "총리 못지않게 눈여겨볼 직책이 대통령실장"이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이 당선자는 "객관적인 인선을 하겠다"며 이른바 '인사위원회'를 극비리에 가동시켰습니다. 팀장인 유우익 서울대 교수, 정치와 무관한 외부 인사 4명,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 박영준 비서실 총괄팀장 등이 취합한 조각 리스트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 당선자가 요구한 대통령실장의 인선 기준은 '정치적인 욕심은 없으나 정치 감각은 뛰어난 사람' '대통령과 내각을 소통시킬 수 있는 사람' 두 가지였습니다. 대통령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할 수 있는 자질까지 찾다 보니 인선난이었다는 소문입니다.

    1897년 대한제국 황실과 각 부에 전화 12대가 설치됐을 때였습니다. 당시 전화과장 이재찬은 요즘의 청와대 비서실장 못지않게 막강했다고 합니다. 감도가 형편없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는 것 자체가 '기술'이었는데 고종에게 잘 보이고 밉보이고는 이 과장의 '기술'에 달렸다는 겁니다.

    이 당선자는 서울시장과 대선 후보 시절 비서실장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당선자는 2인자도 만들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귀하가 그냥 "어어" 하고 지내다 보면 '실세형'보다는 '비서형' 대통령실장이 되기 쉬울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 23명의 청와대 비서실장 중 13명이 '비서형'이었다 하니 그렇게 되더라도 상심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실세도 아니고 비서도 아니고, '실무형'이 돼야 합니다.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을 쓴 데이비드 거겐(Gergen)은 "대통령은 너무 바빠 백악관의 감독자가 될 수 없다. 비서실장에게 완전한 권위를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당선자가 그런 인식을 하도록 귀하 스스로 권위를 갖추는 것이 실무형이 되기 위한 첫 관문입니다. 백악관을 그린 드라마 '웨스트 윙(West Wing)'을 보면 대통령이 농무장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네, 친구가 있나?" "네" "목숨을 걸 수도 있나?" "네" "나에게 그런 친구는 비서실장일세"…. 단순한 '예스맨'이 얻을 수 있는 신뢰는 아닐 듯합니다.

    비서실장이 과거 선거 참모였느냐, 아니냐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선거 참모는 충성도나 대통령과의 소통 측면에선 낫지만 국정을 피아(彼我)로 가르기 쉽습니다. 귀하가 지난 선거 때 이 당선자의 참모였다면 귀하부터 피아 감별 습관을 버려야 이명박 정부의 탕평(蕩平)이 가능합니다. 쉬운 길은 아닐 겁니다. 무수한 선거 공신들이 귀하를 견제하려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백악관을 '바퀴의 축'처럼 운영해 달라고 비서실장에게 주문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주변에 바퀴살이 너무 많으면 뻑뻑해지고, 너무 적으면 주저앉게 되니까요. 귀하가 대통령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을 막다 보면 '장막'을 친다는 비판을 듣게 될 겁니다. 반대로 대통령으로 통하는 길을 너무 열어 두면 대통령의 정력과 시간은 낭비됩니다.

    결론은 귀하가 성공하고 동시에 귀하의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대통령과 대통령의 공신들과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사심 없는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이 말했듯 '대통령에게 날카롭게 짖어댈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일찌감치 고사(固辭)하십시오. 미리 글을 띄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