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주용중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이 당선자와'머슴 리더십’>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는 일 잘하는 머슴이다. 상머슴으로는 이명박이 최고다"라고 했다. 머슴의 제1 조건을 부지런함으로 꼽는다면 이 당선자는 상머슴이라 할 만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휴일 없는 노 홀리데이(no holiday)를 주문해 놓고 1월 1일 "여러분은 정초에 여기서 왜 만났느냐. 적당히 하루를 보내려면 하루 쉰 것만 못하다"고 했다. 밤에 불쑥 들러 일 잘하나 점검한 적도 있다. 인수위의 일일 활동 보고서도 꼼꼼하게 챙긴다고 한다. 한겨울에 테니스 세 게임을 내리 칠 정도이니 체력도 '머슴급'이다. 이 당선자는 당선 다음 날 현충원 방명록에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적은 뒤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고 있으니 '주인'을 모시는 자세도 기본은 갖춘 셈이다. "섬기겠다"는 말은 요즘 이 당선자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됐다. 측근들은"이명박 정부는 도우미 정부"라는 말도 한다.

    천하를 61년간 경영했던 청나라 강희제의 좌우명은 '국궁진력(鞠躬盡力·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구부려 온 힘을 다한다)'이었다고 한다. 기독교 신자인 이 당선자는 '섬긴다'는 말을 아무래도 성경에서 빌려온 것 같다. 그가 경영학의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머슴 또는 섬김의 리더십)'을 추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왕 말을 꺼냈으니 '머슴 리더'의 진면목을 보여줬으면 한다. 전통적 리더는 사람을 일 시켜서 성과를 내도록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만 머슴 리더는 일을 통해 성장시킬 대상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 리더는 과제가 우선이지만 머슴 리더는 사람이 우선이다. 전통적 리더는 내부 경쟁 메커니즘을 선호하지만 머슴 리더는 과당경쟁을 경계하고 모두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선다.

    머슴의 실적은 수치로 가늠하기 마련이다. 논 몇 마지기를 일구고 나무 몇 짐 하고 장작 몇 단을 패고…. 이 당선자도 수치를 중시한다. 대표 공약부터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이다. 이 당선자의 공약집은 '3대 비전 10대 희망 43대 과제 92개 약속'을 담고 있다. 거기엔 300만개 일자리 창출, 50만호 주택 건설, 예산 20조원 절감 등 각종 수치가 빼곡하다. 이 당선자는 정책을 의논할 때도 수치를 자주 물어봐서 측근들이 진땀을 흘린다고 한다. 수치를 챙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실용적이란 뜻이고 성과를 내는 데도 효율적이다. 그러나 수치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당선자 측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목표치보다 1%포인트 낮은 6%로 잡았지만 한국은행 예상치는 4.7%다. 인수위는 한국은행에 '747 달성을 위한 정책방향'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독립적으로 금융통화정책을 세워야 할 한국은행과 이 당선자 측이 행여 티격태격이라도 한다면 거시 경제에 불안의 싹이 움틀 수 있다.

    머슴과 머슴 리더가 다른 점은, 머슴은 수치만 좋으면 대개 후한 점수를 받지만, 머슴 리더는 수치로 잴 수 없는 질적인 성취가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이다. 머슴 리더십의 창시자 로버트 그린리프(Greenleaf)는 그 핵심으로 공동체와의 공감과 치유를 꼽았다. 이 당선자가 진정으로 머슴 리더를 자처한다면 '잃어버린 10년' 동안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새로운 10년'이 '잃어버린 10년'과는 어떻게 달라야 하고 그 다른 세상을 어떤 가치관으로 개척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국민과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당선자는 취임 전에 자신의 리더십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