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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선은 보수 진영의 10년 만의 정권 탈환과 진보·개혁 진영의 참패로 끝났다. 민주 국가에서 정권은 수시로 바뀌기 마련이지만, 이번 대선 결과가 주는 의미는 자못 심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에는 무능하지만 선거에는 귀재’라는 평가를 받아 온 진보·개혁 진영이 10년의 기득권을 지키지 못한 채 자칫 몰락할지도 모를 정도의 최악의 패배를 초래한 것은 어떤 연유인가?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 때문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대체로 맞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진보 혹은 좌파 이론가들은 노무현 정부의 우편향성이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민심을 이반했다고 진단한다. 반면에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좌파적이었기 때문에 민생 경제에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로 지향하는 가치관의 상극만큼이나 노무현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상이한 편이다.
필자가 보기에 노무현 정부는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한다. ① 노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자신들의 노선이 지고지선하다는 생각에 빠진 점 ② 그 귀결로서 폭넓은 대화와 소통보다는 일방통행식의 국정 운영을 했다는 점 ③ 천하의 인재를 구하기보다는 대통령과 국정 주도 세력의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로 일관했다는 점 ④ 과도한 관념에 비해 실천력이 빈약했다는 점 ⑤ 민생 경제 회복이라는 국민적 여망과는 다른 국정의제를 설정했다는 점 등이다.
노 대통령이 역대 정부에 비하여 깨끗했고 나름대로 좋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2004년 5월 이후 여당이 국회 다수당이었는데도 위와 같은 오류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고, 대선에서도 여당에게 역사상 유례가 없는 참패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제17대 대선에서의 진보·개혁 진영의 참패는 노선의 실패라기보다는 국가 경영에 있어서의 태도와 역량의 문제이다. 따라서 진보·개혁 진영으로서는 ‘한국에서 진보·개혁 정치는 끝났다’고 비관할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자신들의 좁은 눈으로 세상을 재단하려고 했던 오만과 독선을 버리고 세상의 눈, 역사의 지혜를 배우겠다는 자세로 다시 무장해야 한다.
한편,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은 이번 대선 결과가 한나라당이 그 동안 잘 한 결과이거나 보수 진영의 노선을 국민들이 승인해 준 것이 아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명박 당선자의 실용주의 노선과 경영 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없었다면 그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당선자의 노선과 능력을 제대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함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입장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① 당선자와 핵심 참모들의 노선이 지고지선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② 폭넓은 대화와 소통보다는 일방통행 식의 국정 운영을 할 위험성은 없는지? ③ 천하의 인재를 두루 구하겠다는 의지와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 ④ 관념에 비해 실천력이 뒤따라주고 있는지? ⑤ 국정 의제의 우선순위를 잘 세우고 있는지?
이명박 차기 정부가 비교적 잘 해 나가리라는 믿음이 충만해 있는 상황이지만, 인수위원회 활동 등에 있어 우려스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위 기준에 비추어 볼 때, ① 당선자의 실용주의 노선과 달리 시장근본주의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 당선자의 의중이 제대로 관철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②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 과거와의 차별화에 지나치게 연연한 나머지 일을 조급하게 풀어가고 있다는 점 ③ 짧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공신 등 협소한 인재 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④ 아직 검증하기는 이르지만 의욕에 비해 프로페셔널리즘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 ⑤ 하드웨어 위주의 경제 발전 구상에 대하여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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