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에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쓴 '사냥개를 버려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상원(上院)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빠를수록 좋다. 늦어도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전까지 만들어지면 좋겠다. 상원의원에 대한 예우는 극진해야 한다. 넉넉한 세비와 지위에 걸맞은 의전을 제공해야 한다. 상원이 수행하는 업무는? 없다. 오히려 상원의원은 공무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대우는 좋고 하는 일은 없는, 이 꽃보직에 누구를 임명해야 할까? 굳이 선거로 선출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 당선자가 지명하면 된다. 어떤 사람을 지명하는가? 이번 선거에 공(功)이 커서 당선자가 신세를 갚아야 할 인사를 주로 임명한다. 혹시 여분의 자리가 남는다면, 향후 추진될 공공부문의 쇄신작업에서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일 기득권 계층을 일부 배려해도 괜찮겠다. 편의상 이를 ‘보은형 상원’이라고 이름 붙이자.

    이런 쓸 데 없는 조직을 왜 만드느냐는 비판이 거세겠지만, 할 말은 있다. 지난 5년간 노무현 정부의 인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라. 청와대 비서실에서 지방공기업의 감사실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입김이 닿는 자리는 대선에 다소라도 공이 있는 인사들이 대거 차지했다. 무자격자에 대한 ‘보은 인사’로 인해 발생할 각 조직의 방만한 운영, 잘못된 정책결정, 그리고 부정부패로 인한 비용을 합치면 조(兆) 단위의 금액일 것이다. 상원이라도 둬서 비전문가들이 국정을 농단할 것을 차단할 수 있다면, 설령 그 운영에 몇 백억이 들더라도 경제적이다. 더구나 보은형 상원은 코드인사, 회전문인사, 낙하산인사 등의 비판에서 인사권자를 자유롭게 한다. ‘실용’적이지 않은가?

    이런 상원이 설치될 가능성은? 없다. 물론 이 제안이 진심도 아니다. 아침부터 허언(虛言)으로 지면을 낭비한 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하지만 웃자고 하는 농담만은 아니다. 정말이지 걱정이 된다.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는 필연적으로 그동안 열성적으로 뛰어준 선거참모들에게 심리적 부채감을 크게 갖게 된다. 사람에 대한 평가 또한 선거운동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선거에 필요한 능력과 국가경영에 필요한 자질은 판이하게 다르다. 역대 대선에서 큰 공을 세운 측근인사들이 “내가 대통령을 만들었다”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하다가 종국에는 예외 없이 구속됐던 사태는 우연이 아니다. 이번 선거의 짙은 그림자였던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선거의 공신들이 그대로 국가경영의 중책을 수행한 데서 출발했다.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고, 새를 잡고 나면 활을 광에 넣는다는 고사(故事)는 권력의 냉혹한 속성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과업에 따라 변화해야 하는 리더십의 본질과 상황의존적 인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임기 초반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라 구석구석을 뒤바꾸어 줄 것으로 많은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새 대통령의 흉중을 알고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측근인사의 중용은 불가피할 것이다. 배경을 따지지 않고 실적을 중시한다는 이 당선자의 인사 스타일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크고 작은 인사가 대선 논공행상의 마당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한다. 선거의 참모들은 자신의 보스를 더 오를 곳이 없는 자리에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그래도 공신들이 마음에 걸린다면, 정말이지 보은형 상원이라도 만들라.

    이 당선자의 의지만 굳다면 상원 따위는 물론 필요 없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과거의 사연(私緣)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의 비전을 바라보는 인사, 능력만 갖췄다면 정파를 초월해 인재를 모셔올 수 있는 인사, 측근들이 선거의 공을 빌미로 국정을 농단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인사가 바로 ‘실용’의 첫걸음이다. 이제 이 당선자는 후보가 아니라 차기 대통령이다. 나라를 다시 도약시켜 달라는 국민들의 절박한 부름에 옷깃을 다시 여미고, 국가 경영의 올바른 철학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최고의 전문가를 백지상태에서 새로 골라 나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