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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칼럼 '리멤버(Remember) 1219'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2년 12월 19일, 꼭 5년 전 오늘이었다. 밤 10시 20분 무렵, 전국 개표율이 87%에 이르자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1000만표 고지를 넘어섰다. TV화면엔 ‘노무현 후보 당선 확실’이라는 자막이 깔렸다. 감색 양복에 자줏빛 넥타이를 맨 노 후보가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 나타났다. 노란 점퍼를 입은 지지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연호하며 열광했다.
당사로 들어선 노 후보는 제일 먼저 2층 기자실을 찾았다. 노 후보가 처음 꺼낸 말은 “국민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저의 당선을 위해 노력한 당원동지, 노사모, 개혁국민정당 여러분께 감사한다”였다. 그는 이어 “그러나 저를 지지한 분들뿐 아니라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을 포함, 모든 분들을 위한 대통령,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약속한다”고 했다.
그해 대선은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 양강(兩强) 구도로 치러진 선거였다. 유권자들은 50대 50으로 두 동강 났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심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노사모 게시판엔 “대선 승리가 하나도 기쁘지 않다. 이회창 후보에게 46% 득표를 안겨준 이 나라가 이해 안 간다”는 글이 올랐다. 부디 노 후보가 ‘지지자, 비(非)지지자,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을 지켜 국민 전체를 품어 안아 줬으면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3년 12월 19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리멤버 1219’ 행사가 열렸다. 노사모를 주축으로 한 노 대통령 지지자 1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대선 승리 1주년을 자축하는 모임이었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승리했으나 대통령 선거는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라며 “그들은 승복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저를 흔들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연설 내내 자신의 지지자들을 ‘우리’, 비(非)지지자들을 ‘그들’이라고 불렀다. 그날 밤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노사모 회장’이었다. ‘지지자, 비(非)지지자,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1년 전 약속은 허공 속에 흩어졌다.
또다시 4년이 흘러 2007년 12월 19일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여다야다(與多野多) 구도 속에 치러졌다. 표밭이 좌우로 갈린 것은 물론이고, 양 진영 내에서도 ‘대표선수가 미덥지 않다’는 분파가 갈라섰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여진이 가시지 않고 있는 BBK의혹’,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국정파탄 정권의 주역이라는 전력(前歷)’,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차떼기 대선자금과 정계은퇴 번복’이라는 멍에를 지고 있다. 3강 후보 모두가 각자의 흠결이 있고, 다른 진영으로부터 ‘대통령이 돼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민의 선택’이라는 축복 속에 새 출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오늘 밤 9시 무렵이면 대선 승패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새 당선자는 5년 전 노 당선자가 했던 첫 다짐을 그대로 따랐으면 한다. “나를 지지해 준 유권자뿐 아니라, 지지하지 않은 분들까지 포함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리고 새 당선자는 전임자와는 달리 그 약속을 임기 내내 실천에 옮겨야 한다.
2008년 12월 19일, 우리는 1년 전 선택을 되새기는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그 자리를 또다시 특정 정파만의 굿판으로 만들 수는 없다. 국민 절반만 무지갯빛 환호를 맛보고, 나머지 절반은 잿빛 절망 속에 빠져드는 ‘1219’의 주술에서 나라를 건져 내야 한다. 그 엄중한 책임이 오늘 밤 얼굴을 드러낼 새 당선자의 어깨 위에 얹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