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이선민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번 대선은 좌파와 우파 모두 분열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른다. 좌파는 애초 독자 세력이었던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제외하더라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로 나뉘었고, 우파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갈라졌다. 선거운동 기간 중 두 진영 모두 어느 한쪽의 후보 사퇴로 단일화의 가능성이 점쳐지거나 추진됐다. 그러나 적어도 선거일 하루 전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찬반이 확연히 갈라져 이념적 대립이 분명했다. 그런 선거가 이렇게 각 진영의 분열 속에서 전개된 것은 올해 초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분열은 좌파에서 먼저 일어났다. 집권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민심 이반(離反)에 대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해산과 재결합을 거듭했다. 그때 잠재적 유력후보의 한 사람인 문국현씨는 참여 권유를 받았지만 합류를 거부했다. 당내 기반이 없는 터라 경선을 통해 후보가 될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념과 정책에서 새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여권에 가담해 봤자 이롭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사람 중심’ ‘자율·연대·생태’ ‘중소기업 위주’ 등 그가 내세우는 슬로건은 ‘지속 가능한 신좌파’의 가능성을 모색하던 일부 학자와 시민운동가의 공감을 샀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반인의 지지도 빠르게 확산됐다.

    이런 점에서 좌파의 분열은 이유 있는 것이었다. 후보 등록 후 일어난 단일화 압력이 성공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문국현 지지자들은 명분 없는 사퇴 압력이라고 거세게 저항했다.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면서 침체했던 문 후보 지지율은 단일화가 무산된 후 오히려 상승했다. 이것은 좌파의 분열이 분파주의나 정치적 타산보다 향후 진로를 둘러싼 갈등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나 좌파 진영은 후보 단일화 논란만 무성했을 뿐 두 후보 간에 정작 제대로 된 이념·노선 논쟁은 하지 못했다.

    우파에서도 뒤늦게 분열이 발생했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예비후보는 치열한 경쟁을 벌여 이명박씨가 승리했고 박근혜씨는 승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박근혜씨와 지지층·이념이 상당 부분 겹치는 이회창씨가 당 밖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처음 이명박씨가 ‘불안한 후보’라서 정권 교체가 어려울 수 있어 출마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핵심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후보는 ‘위장 보수’고, 자신은 ‘진정한 보수’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의 출마가 갑작스러웠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았다. 이명박의 ‘신보수’와 이회창의 ‘정통 보수’가 어떤 차이가 얼마나 있는지 궁금증을 만족스럽게 풀어주지 못했다.

    이번에 나타난 분열은 대선이 끝나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국현 후보는 어렵게 이룩한 대선 완주를 기반으로 총선에서도 독자적인 길을 걸을 전망이다. 이회창 후보 역시 신당을 만들어 대선 후에도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선의 대립 구도가 그대로 총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선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이념과 정책 차이를 다음 총선에서 분명히 제시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정책선거가 실종되는 바람에 대한민국의 비전을 놓고 벌이는 승부는 내년 총선으로 이월됐다. 총선에서 분열된 좌파, 갈라진 우파에 대해 각 진영의 지지층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앞으로 상당 기간 우리 사회의 정치·이념 지형도가 그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