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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 선거가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후보를 결정한 유권자도, 고민 중이라 답하는 유권자도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우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유권자들 다수는 겉으로 대선 결과를 예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서울 여의도 1번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곳에선 '이미 대선은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후보의 과반득표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까지 등장했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한나라당은 이 후보 당선 이후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후보는 이 같은 모습이 자칫 오만으로 비춰질까봐 함구령까지 내린 상황이다.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패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말까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원들의 시선은 엿새 뒤 대선이 아닌 2008년 4월 9일 있을 총선에 쏠려있다. 대선 전 정치적 선택이 곧바로 있을 총선공천과 총선에서의 당락여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노른자라 불리는 수도권과 영남 등 텃밭을 둔 의원들간 총선 공천경쟁이 치열하고 3선 이상 중진 의원들 중에는 입각을 준비하는 의원도 상당수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범여권 단일화가 무산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총선이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2일 국회에선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인 이상열 의원은 이날 본회의장으로 진입하는 2층에서 '정동영-이인제' 두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11일 최종 후보는 정동영, 양당의 합당은 대선 이후에 하기로 합의되는 듯 했던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협상이 결렬되자 이 의원은 다음날 두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선택한 것이다.
자당인 민주당이 전날 3시간의 격론 끝에 내린 결정에 반발한 것인데 "중도개혁 정권을 세우기 위해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이 의원의 단식농성 명분과 달리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의 행보를 '총선용'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않다. 지난달 12일 국민 앞에 서명한 단일화 및 합당 선언을 파기했고 이후 민주당과 이 의원은 정 후보와 통합신당을 비판하며 '정권교체'를 역설해왔다. 더구나 이 의원은 정책위의장으로 이인제 후보의 정책과 공약을 앞장서 설명해온 장본인이다. 때문에 '결국 총선을 겨냥한 행동'이란 뒷말이 자연스레 붙었다. 이 의원이 정 후보로의 단일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정치적 해석을 낳은 요인으로 꼽힌다.
오후 본회의장에서도 이상한 광경이 연출됐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신당이 제출한 BBK 검사 3인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보고됐다. 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의 물리적 충돌이 예상됐었지만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에 불참결정을 내리면서 통합신당 의원들만 참석한 채 이뤄졌다. 통합신당이 의원총회를 끝낸 뒤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순간 의장석 아래에 한 의원이 '국법수호 탄핵반대'란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던 것이다.
본회의장에 입장하려던 통합신당 의원들은 피켓 시위를 하는 의원을 보고 "누구야?" "누가 저기 서 있는 거야?" "한나라당 들어온데?" 등의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잠시 뒤 의원들과 주변의 취재진들 입에선 "한나라당 의원이 아니라 국중당(국민중심당) 정진석 의원이잖아"라는 말이 나왔다. 피켓시위의 주인공은 국중당 정진석 의원이었다. 본회의장 내에 한나라당 의원은 없었다.
본회의장 밖 주변에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일부 취재진 입에선 "저런 걸 신고식 치른다고 하는 거야"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현재 국중당은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연대한 상황이다. 정 의원이 이회창 후보와의 연대 전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고 하지만 정 의원은 아직 국중당 당적을 갖고있다. 때문에 주변의 시선은 정 의원이 들고 있던 '국법수호, 탄핵반대' 글귀가 쓰인 피켓보다 '뜬금없다'는 주변의 반응에 쏠렸다. 정 의원의 이날 행동 역시 '총선용'이란 뒷말이 무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