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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시론'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기호 2번 이명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박근혜 이회창의 골수 지지자들은. ‘대통령 이명박 당선 확정’, 12월19일 저녁 TV 자막으로 데굴데굴 굴러나오는 순간엔. 박근혜가 한나라당 후보만 되었다면 따논 당상이었는데, 이회창이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라도 나왔다면? 정동영 지지자들보다 더 이명박 당선을 승복하지 않으려는 보수·우파 지지층의 울화를 깊숙이 다독거리려는 혜안과 대책을 이명박 진영은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
이명박이 이런 추세대로 앞으로 남은 8일을 버틸 수만 있다면 이명박은 대선 사상 최대의 표차로 대승한다. 그러나 이명박 지지층에 박근혜와 이회창 지지세력이 잠시 숨어 있는 사실을 간과해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린다? 그렇게되면 보수·우파 세력은 이명박당, 박근혜당, 이회창당이라는 세 당으로 대분열해 골육상쟁의 길을 걷다가 내년 4월 총선을 맞이할 것이다.
결과는 자명하다. 1988년 신임 대통령 노태우 앞에 놓여졌던 4당체제가 20년 만에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 이명박당이 국회 과반수를 얻지못하는 상황이되면 이명박은 곧바로 ‘식물대통령’이 된다.
왜 그럴까? 박근혜 이회창 지지세력이면서도 오직 정권교체를 위해 이명박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은 대통령 이명박을 만들어주는 순간 부채감을 벗어던지고 박근혜 이회창 지지의 본색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다. 이명박은 자신의 지지층을 상인의 계산법이 아니라 ‘정치거상(巨商)’의 눈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이명박의 일등공신은 박근혜이고, 이등공신은 이회창이다.
박근혜의 정도(正道)가 대통령 이명박을 만들어주었다. 경제를 살릴 수 있어 보이기 때문에 이명박을 찍는다? 그것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경제라는 이유를 대는 것은 양에 안차는 이명박을 찍는데 동원된 구실이라고 보는 것이 정직한 분석이다.
저 좌파 무능정권에 벌을 주려면 그래도 정권교체는 해야 하기 때문에. 왜 이회창이 이등공신일까? 비(非)이명박의 중도 우파가 정동영으로 넘어가는 걸 막는 방파제 역할. 이명박이 박근혜와 이회창을 누르고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와 이회창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당선되는 이 기막힌 역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대선 후 박근혜와 이회창을 포용할 수 있는 해법이 나온다.
이명박은 당선되는 순간 샴페인을 들고 박근혜와 이회창을 찾아가 화합하고 통합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며, 보수·우파의 대단결에 협력해 줄 것을 간청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당선 후 열흘 안에 박근혜와 이회창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이명박 정권의 미래가 달려 있다.
박근혜에겐 대권·당권 분리원칙에 따라 합당한 예우와 지분을 인정해주는 결단이 필요하고, 이회창을 보수·우파의 원조(元祖)로 다시 격상시켜 한나라당 울타리 안으로 그와 지지층을 복귀시킬 수 있는 드라마틱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해법을 남은 선거 기간 안에 파격적으로 제시할 경우 아직도 이명박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박근혜 이회창 골수 지지층의 흔쾌한 지지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는 당을 만들어 나갈 수 없다? 그러니 이명박당으로 가도된다? 대선 후 이명박 진영이 또 ‘오만의 극치’를 보인다면 박근혜와 그 지지층은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울 것이다.이명박이 대선 사상 최대 득표로 당선되는 순간 차제에 박근혜를 쳐내버리자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
이회창이 2000년 총선에서 자신의 일등공신인 김윤환을 낙천시켜 제거했던 것처럼. 그래서 이회창은 어떤 결과였는가. 이회창은 지금 대선 후 창당을 향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러면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개인 회사 사장의 단순 방정식이지 정치가 아니다. 이것은 대통령 이명박 개인의 정치생명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다. 보수·우파세력의 분열은 보수·우파정권의 운명에 무덤을 파는 결과에 이른다.
이명박은 지금 진정 정치지도자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눈을 질끈 감고 표를 던져주면서 제발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고 애원하는 보수·우파 지지층에 보답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