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주용중 정치부차장대우가 쓴 '박근혜 vs. 박근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샌드위치 신세다. 이명박 후보측에서는 그동안 “좀 더 화끈하게 지원해줄 수 없느냐”고 투덜댔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며칠 전 “그 후보(이명박) 때문에 박 전 대표가 볼모가 돼 있다”고 했다. 양분된 우파 세력이 박 전 대표를 가운데 놓고 들들 볶았다.

    경선 때 그를 도왔던 사람들도 의견이 분분했다. 몇몇 측근들은 “이명박 후보가 바라는 이상으로 화끈하게 도와주자”고 했다. 그래야 대선 후 이 후보에게 요구할 수 있는 몫이 커진다거나 ‘이명박 정권’의 성공이 ‘박근혜의 차기’를 잉태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또 다른 측근들은 “꼭 BBK가 아니라도 숱한 ‘위장(僞裝)’사건에 둘러싸인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감이 돼선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 이미 곽성문·김병호 의원은 박 전 대표 품을 떠나 이회창 후보 쪽으로 갔다. ‘박사모’ 정광용 회장은 이회창 캠프 조직4팀장이 됐다. 일부 지지자들은 지난주 박 전 대표의 첫 유세 길을 막기 위해 그의 자택 앞에 드러누웠다.

    이런 풍경을 목도하는 박 전 대표의 심경은 착잡했을 것이다. 한 측근은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승자에 유세부리지 않으면서 조용히 할 일을 해온 사람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 정치판이 야속하다”고 했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 보면 두 이 후보는 공통점이 있다.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는 지난 경선 때 적수였다. 두 사람은 승자였지만 패자인 박 전 대표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경선 때 박 전 대표와 혈전을 벌이다 신승(辛勝)한 이명박 후보는 박 전 대표를 “동반자”라고 말하는 데 석 달이 걸렸다. 박 전 대표가 2002년 “제왕적 총재”라며 반기를 들었던 이회창 후보는 “이렇게 지독한 경선은 처음 본다”고 하더니 뒤늦게 ‘지독한 본선’을 자청했다. 이런 두 사람이 이제 와서 자신의 소매를 부여잡으려는 태도에 박 전 대표는 연민을 느낄지도 모른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한나라당으로 정권 교체를 하는 데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정도(正道)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경선 때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선 “의혹투성이 후보, 시한폭탄 후보”라고 했다. 검찰이 이명박 후보가 BBK는 물론 다스와도 무관하다는 수사결과를 내놓고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그런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들고일어난 지금 박 전 대표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재평가를 내놓아야 할 처지다.

    솔직하게 말하라면 이명박 후보도, 이회창 후보도 박 전 대표에겐 마뜩잖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도덕의 세계가 아니며, 정권 교체를 위해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누구보다 박 전 대표 스스로 잘 알고 있다.

    5일 하루 쉰 박 전 대표는 6일부터 다시 유세에 나선다. 그는 변함없이 ‘한나라당으로 정권 교체가 돼야 한다→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 후보다→이명박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3단 논법을 펼 것이다. 이명박 후보측에서는 “BBK 의혹이 깨끗하게 벗겨진 만큼 박 전 대표가 좀 더 화끈해야 한다”고 다시 재촉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만큼 분명한 논리도 없다. 박 전 대표에게 ‘배 놓아라, 밤 놓아라’ 하는 식으로 자꾸 등을 떠밀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한가지, 박 전 대표는 경선 때 “손에 붕대를 감아도, 얼굴에 칼이 날아와도 어디든지 달려갔습니다. 제 온몸을 던졌습니다”라고 했다.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를 황금분할시키려는 범여권의 전략을 무력화시켜야 할 우파 세력에겐 박 전 대표의 그런 열정이 다시 절실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