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3일 동안(11. 27∼29) 평양에서 남북국방장관회담이 열린다. 실무준비회담의 결과에 비추어 이번 남북국방장관회담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무준비회담에서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변경, 북을 주적(主敵)으로 하는 국군정신교육 중단,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요구했다.(2007. 11. 26, 동아일보) 이번 남북국방장관회담은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총리회담에 이어 열리는 것으로 앞서 열렸던 두 회담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총리회담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합의사항들이 이행되려면 소위 '군사보장조치'라는 것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고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군사보장조치'가 바로 남북국방장관회담에 달려 있고 북한은 이의 타결을 위한 핵심조건으로 NLL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국민들은 NLL의 위상에 무슨 변화가 생길 것인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NLL은 1953년 8월 30일 유엔군사령관에 의해 설정된 이후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특히 서해 5도는 물론 수도권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1953년 이후 20년 동안이나 NLL을 실질적인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해 오다가 이의 변경을 주장하고 있는 북한의 속셈이나 이에 동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일부 좌경세력이 노리고 있는 목표는 우리의 안보체계를 철저히 붕괴시키기 위한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좌경세력들은 줄기차게 NLL이 쌍방이 합의하지 않은 선(線)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입장에 동조해 왔다. 그러나 NLL은 오히려 유엔군 측의 대폭 양보에 의한 결과임이 입증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은 한반도 주변의 모든 섬과 바다를 거의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었지만 휴전 이후 유엔군 측은 NLL을 설정하고 NLL 이북의 바다를 북한에 되돌려주었다. 그 결과 북한도 이를 실질적인 해상 경계선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2007. 10. 13, 조선일보)

    그러던 북한은 미국에서 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이후 미중 접근으로 인한 국제적 분위기가 유리하게 진행된다고 판단하고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NLL을 부정하는 각종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공세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두드러져 북한 경비정의 불법적인 영해 침범으로 이어졌지만 김대중 정부는 오히려 이를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보호하기 위한 단순한 월선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1999년 6월의 연평해전과 2002년 6월의 서해교전과 같은 참극(慘劇)으로 이어진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노대통령은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어릴 적 땅따먹기 놀이에 비교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는 바다에 선을 긋는 나라는 없다고 하고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영토 개념이 아니라 안보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주석 전 대통령 비서관은 NLL이 영해선이라는 의미는 위헌(違憲)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들은 북한의 입장을 강력하게 대변하는 것들로서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앞둔 김장수 국방장관에 대한 커다란 압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온 "NLL 양보는 없다"는 김장수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의 발언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장관은 10월 17일 국정감사에서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NLL을 양보하거나 열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명히 다짐했다.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은 10월 23일 "NLL은 우리의 해양경계선"이라고 말했고 김은기 공군참모총장도 10월 24일 "상부의 별도 지침이 없는 한 NLL을 중심으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까지 NLL은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 사이의 충돌을 막아온 '해상인계철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NLL의 변경을 노리는 진정한 이유가 유사시 북한의 대남 기습을 저지할 서해 5도의 아군 전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제기되는 "NLL을 양보하면 서해상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주장은 북한의 대남군사전략을 도외시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NLL이 북한의 의도대로 변경된다면 서해에서 남북한의 해군 함정들이 혼재하게 되어 당연히 무력 충돌 가능성도 훨씬 높아지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제 북한의 핵 무장, 한미동맹의 형해화(形骸化)에 이어 NLL 논란으로 인해 우리의 생존 문제조차 북한의 아량과 자비심에 맡겨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만일 NLL이 북한의 요구대로 변경된다면 대한민국의 핵심 지역인 수도권의 안보가 북한에 완전히 노출되게 되어 우리의 생존이 결정적으로 위협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NLL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우리의 최후 방어선인 것이다. NLL이 무너지면 연평해전과 서해교전 같은 충돌이 더욱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로 보아 NLL에 대한 북한의 부정과 도발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남북 사이의 경쟁에서 승자가 되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전략의 일부인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NLL에 대해 공허한 민족주의와 감상적 평화주의라는 어떠한 환상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안보와 군사적 관점에서만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제기될 북한의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도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지킨다는 확실한 입장을 견지하고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대처해야만 한다.

    자칫 소홀히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안보 문제이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있는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북한의 공세에 말려들지 말고 나라의 안보와 생존 문제만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김장관은 노대통령이 임명했다 하더라도 노대통령의 장관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방장관이자 대한민국 군인의 수장이다. 많은 국민들은 10월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대통령을 수행했던 김장관의 ‘꼿꼿한 허리’를 기억하고 있다. 이번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도 NLL에 관한 협상에서 김장관의 ‘꼿꼿한 허리’가 굽혀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