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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것은 가짜다. - 연암 박지원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이 30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쯤이면 선거 구도가 정해지고 판세의 윤곽이 어느 정도 점쳐질 만한데도, 이번 대선은 한국 정치의 유동성에 비추어보더라도 지나칠 만큼 안개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멀쩡하던 정당을 이리저리 쪼갰다 붙였다 난리법석을 떨고, 후보 단일화를 하니 마니 하면서 아직 대표 선수를 정하지도 못하고 있는 범여권의 행태는 코미디 중의 코미디입니다.
특히 지난 5년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국정 실패의 주역인 정동영 후보가 그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와의 인연을 단절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해 온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흔적이 지워질 수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더욱이 4년 전 지역주의 탈피라는 명분으로 집권 민주당을 쪼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정동영 후보가 여권 통합을 명분으로 지역주의로 회귀하는 ‘도로 민주당’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5년 전 대선 재수에 실패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이회창 씨가 슬그머니 복귀하여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반역입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한나라당의 정권 창출을 실패로 내몬 장본인이 자신의 출마로 국민적인 여망인 정권 교체를 물 건너가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뻔히 알고도 이를 강행한 것은 스스로 여권의 제2중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두가 한국 정치가 대단히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품 정당을 양산하며 한국 정치를 보따리 정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범여권과, 자신을 총재와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준 정당을 뛰쳐나와 남 좋은 일 시켜주고 있는 이회창 씨 모두 민주 정치의 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한나라당이 지난 두 번의 대선 실패에도 불구하고 당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투표일 30일을 남겨놓고 있는 지금, 정치권의 눈은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에 쏠려 있습니다. 고도의 지능범이자 위조 전문가인 국제 사기꾼 김경준의 입을 쳐다보고 있는 기현상입니다. 사기꾼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을 리 만무한데도 그의 입에 놀아나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심지어 김경준이 들고 왔다는 문건에 기대를 걸고 있는 여권의 작태는 실로 한심합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사기꾼을 이렇게 신뢰하고 존중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오죽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김경준이 인천공항 청사를 빠져나오면서 금의환향하는 영웅의 자세를 취했겠습니까? 누가 희대의 사기꾼을 영웅으로 둔갑시켰습니까? 바로 현 여권 아닙니까? 5년 전 김대업을 의인으로 추켜세운 그들이 이제 또 다시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이 네거티브 공방으로 날을 지새우고 김경준이란 사기꾼을 선거일 한 달 남겨 놓은 시점에서 귀국시킴으로써 정책 선거가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대한 고비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 실의에 젖어 있는 다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어야 할 이번 대선이 본말전도의 ‘진실 게임’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은 분명 역사의 후퇴입니다.
이번 대선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주범인 정동영 후보는 이 점 하나만으로도 ‘가족 행복’을 주장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에 든 티끌만 열심히 들추어내고 있는 정동영 후보로는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미래를 열 수가 없습니다. 정동영 후보가 평소 자주 써 온 ‘진정성’이 그 자신의 말 속에 없기 때문에 그의 잘 생긴 외모와 화려한 스피치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신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한마디로 ‘이명박 대(對) 반(反)이명박의 싸움’입니다. 정권 교체를 원하면 이명박 후보를, 정권 연장을 원하면 정동영 등 나머지 여권 후보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회창 씨는 정권 교체의 훼방꾼이자 정권 연장 세력의 동행자입니다. 이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야 합니다.
D-30, 고지가 보이는 것 같은 시점이지만, 승패는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의 집권이 역사적 소명이란 확신으로 반(反)역사적인 세력들을 심판해야 합니다. 상대방은 겉으로는 정의의 사도(司徒)인 양 행세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식(無識)하고 무치(無恥)하며 무자비(無慈悲)한 사람들입니다.
저들에 맞서 기필코 승리하기 위해서는 불굴의 신념과 투지로 뭉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직 한나라당은 전투 의지가 부족한 편입니다. 정치는 ‘절반은 싸움이고 절반은 연출’임을 가르쳐 준 마키아벨리의 교시를 가슴 속에 새겨야 할 시점입니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